[데스크칼럼]토끼와 거북이, 그리고 사냥개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거북이가 어떻게 토끼를 이길 수 있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들 녀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한달음에 읽고 나서다. '빠름'이 '느림'에 뒤진 게 아리송한 표정이다. 제 딴에는 '자연의 법칙'을 어긴 대형 사건이다.


이쯤되면 인내와 끈기라는 행간의 가르침이 무색해진다. '토끼가 방심했다'는 설명도 하나마나다. 마땅한 대답을 고민하는 사이 휙 돌아선다. 그새 싫증이 난 게다. 난처한 상황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같은 질문이 머리속을 맴돈다. 정말 토끼는 왜 졌을까?

'일본의 자존심' 소니가 얼마 전 미국 사옥을 매각했다. 일본 본사 사옥 매각으론 자금난을 해소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전 세계 시장을 주름잡았던 전자왕국의 몰락은 처참하다못해 안쓰럽다.


최근에는 델컴퓨터가 사모펀드(PEF)에 팔렸다. 유통을 간소화한 '직접 판매' 혁신으로 90년대 후반 세계 1위 PC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PC산업의 침체, 모바일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속절없이 추락했다. 한때 글로벌 넘버원을 질주했던 토요타도 깊은 슬럼프에서 바둥거리고 있다. 소니와 토요타, 델컴퓨터는 또 다른 모습의 토끼다. 지나친 자기 과신, 시장 변화의 무감각, 추격자에 대한 안일함이 불행을 낳은 것이다.

가장 극적인 시장은 스마트폰이다. 20여년간 휴대폰 시장을 호령했던 핀란드 노키아는 하루 아침에 난파선이 됐다.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진화에 실패한 탓이다. 삼성전자와 특허전을 치르는 애플도 위기감에 휩싸였다. 스티브 잡스의 부재에 따른 혁신의 실종이 결정타다. 오죽하면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은 뒤쳐졌다"고 질타했을까.


그새 혁신의 훈장은 삼성전자가 가로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이 쿨함에서도 삼성에게 밀렸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아이폰에 버금가는 스마트폰을 창조해내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워즈니악도 "삼성전자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호평했다.


삼성과 애플의 엇갈린 평가는 실적으로 이어진다. HS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28%로 애플(20.5%)를 앞섰다. 삼성전자는 전년 동기 20%보다 8%p 급증했으나 애플은 19%에서 1%p 오르는 데 그치면서 명암이 갈렸다.


추격자에서 선도자가 된 삼성전자. 문제는 지금부터다. 창조와 혁신을 멈추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애플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1370억달러(150조원)에 이르는 현금은 재역전의 '한방'이 될 수 있다.

AD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도 경계해야 한다. 화웨이는 작년 4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 애플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1년 만에 판매량이 89.5% 급증하면서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 기업 ZTE는 950만대(4.3%)를 판매해 5위로 떠올랐다. 가트너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휴대폰 판매량에서 상위 10위권에 중국폰이 무려 4개나 이름을 올렸다. 3년 후 전 세계에서 팔리는 제품 10대 중 6대가 중국폰이 될 것이라는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는 삼성전자의 간담을 서늘케한다.


다시 토끼와 거북이가 출발선에 선다. 이번에는 사냥개가 함께 뛴다. 사냥개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죽자사자 달려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토끼. 토끼와 거북이 동화의 새 버전은 토끼의 해피엔딩이다. 중국폰이 사냥개인지 거북이인지는 삼성전자의 선택에 달렸다. 거북이라고 얕보고 자만하면 결말은 뻔하다. 몰락은 순간이다. 사냥개의 추격에서 벗어나려는 토끼처럼, 삼성전자도 창조와 혁신을 향해 숨가쁘게 뛰는 수밖에.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