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BOOK]"세종이 말년에 전전하다 아들집에서 승하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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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병이 잦고, 자녀들의 요절 등으로 경복궁 풍수설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 때문에 세종은 말년에 경복궁을 기피하여 아들, 사위, 형제 등의 집을 옮겨 다녔는데 영응 대군 집을 지을 때 집 동편에 한 궁을 세워 거처할 곳을 준비했다. 그리고 영응대군의 집 동쪽 별궁에서 눈을 감았다. 영응대군의 집을 빈소로 삼았고, 왕세자 문종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약 4개월만에 장례를 치르고 세종의 후궁들은 자수궁으로 옮겼다." -본문중에서-


여성문화해설사인 이순자의 '조선의 숨겨진 왕가(王家) 이야기'는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왕, 왕족과 그들이 사는 주거으로서의 궁(왕가)과의 관계를 조망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가 모르던 왕가들을 찾아 흔적없이 사라진 잔재를 통해 모자이크를 맞추듯 스토리를 이어감으로써 역사를 읽는 재미를 더한다.

"영희전, 이현궁, 어의궁, 창의궁, 운현궁, 경모궁, 육상궁,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신희궁, 용동궁, 계동궁, 사동궁, 창성궁, 죽동궁..."우리가 잘 모르는 궁이지만 왕이 살았거나 왕의 아버지, 어머니 혹은 출가한 왕족이 살았던 곳이다. 그만큼 궁은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세조의 잠저(왕이 되기 전에 살았던 집)인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 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 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 소생인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ㆍ맹학교, 순헌황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에는 서울시의회와 코리아나호텔, 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왕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이런 왕가의 흔적을 따라가 보면 조선 왕실은 물론 조선 역사가 여실히 드러난다. 고종은 1904∼1907년 황실제도정리국을 설치, 왕가를 국유화하거나 정리했다. 종묘에 들지 못하는 후궁들은 모아 칠궁에 모셨다. 선농단과 선잠단도 사직단으로 합치고 역대 어진을 모신 전각도 선원전만 남기고 없앴다. 여기에 일제는 한술 더 떠 전 국토의 소유권을 조사, 황실 재산은 국유화했다. 이 과정에서 왕가는 국유화나 개인소유로 변했다.


왕가마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능양군은 어의궁에서 인조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고 고종과 명성황후는 운현궁에서 가례를 치렀다. 흥선대원군도 이 집에서 섭정을 펼쳤으며 고종은 갑신정변 당시 경우궁으로 피신했으며 3.1운동 민족대표 29명은 순화궁이었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임오군란 때 살해당한 민겸호가 살던 집 용동궁은 독일인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양옥으로 개조해 살았고, 명성황후의 오빠 민승호 일가는 죽동궁에서 폭탄테러로 몰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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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왕가는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터마저 주택지나 공공건물, 고층건물로 변해 흔적조차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심지어는 지난 2010년부터 지번 주소에서 도로명주소로 바뀌면서 이현궁길, 어의궁길, 대빈궁길,누동궁길 등의 길 이름조차 사라져 역사의 흥망성쇠를 가르쳐준다.


저자는 다소 생소한 '궁'이라는 문화재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한 단면을 찾아 어제와 오늘을 이어준다. 특히 자료를 통해 고증은 물론 철저한 답사를 거쳐 역사의 의미를 되새긴다.특히 서울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이순자 글ㆍ사진/평단 출간/값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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