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도 할머니도 투표 인증샷 열풍"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장 앞에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투표 인증샷'이 하나의 선거 풍속도로 자리잡았다.

연예인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던 인증샷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면서 유권자들은 의무감 깃든 '정치참여' 대신 재미가 더해진 '축제'처럼 투표를 즐겼다.

19일 유권자들은 투표 후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어 주변 사람들과 주고 받았다. 인터넷에는 동네 투표소 앞에서도 연예인처럼 폼 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이나 포즈가 유행처럼 번지는가 하면, 페이스북과 포털 사이트에는 인증샷을 올리는 커뮤니티가 별도로 마련됐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당시만 해도 적법성 논란이 일었던 선거 인증샷은 올해 4.11총선을 지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하나의 놀이로 등장하더니 이번 대선에서는 전계층으로 확대돼 중·장년층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했다.

이날 곳곳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투표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유권자들의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서울 용산에 사는 회사원 박모(52)씨는 "대학 동창회부터 조기축구회 모임까지 스마트폰으로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봇물을 이뤘다"며 "투표 후 사진까지 올려야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보니 겸연쩍지만 나도 셀카를 찍어 카카오톡에 공개했다"고 고백했다.

가족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주부 윤모(61)씨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가 며칠 전부터 핸드폰으로 인증샷 찍는 법을 가르쳐줬다"며 "투표는 못하지만 인증샷은 찍고 싶다고 해 같이 왔다"고 말했다.

▲ 김복동 할머니의 투표 인증샷(출처 : 트위터)

페이스북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인증샷이 공개돼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 네티즌이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투표 후 손등에 투표 도장을 찍은 모습"이라는 글과 함께 김 할머니의 손등 사진을 공개하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 사진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실어날랐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투표장을 찾은 임신부도 손쉽게 투표 인증샷을 올렸다. 한 트위터리안(@zyklo**)는 "집사람이 10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는데 6시간만 기다리면 투표할 수 있다고 잘 버텨보겠답니다. 아가 조금만 기달려, 너를 위한 한표란다"라는 글을 올렸고 몇 시간 후에는 태어난 아기의 인증샷을 올렸다.

유권자들 사이에는 인증샷이 선거법을 위반할 경우를 대비해 주의를 당부하는 자정 노력도 스스로 이뤄졌다.

배우 윤은혜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인증샷 중 손가락으로 특정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본 네티즌들이 "선거법 위반 아니냐"고 지적하자 "아무 뜻 없이 버릇처럼… 헉"이라는 글을 남기고 사진을 지웠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20~30대 전유물로 인식되던 투표 인증샷이 이번 대선을 통해 전계층의 정치 참여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의민주주에서 투표 인증샷이 나의 권리, 나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투표 자체가 놀이나 축제 분위기로 인식되면서 재미를 느낀 유권자들의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하는 효과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조인경 기자 ik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