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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박수 받으며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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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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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마지막 날, 화제의 인물 두 사람이 기자회견을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야구선수 박찬호. 고별 회견 시차는 90분. 그러나 회견 분위기는 180도 달랐다.

한상대 총장의 사퇴 회견은 썰렁했다. 넓은 회견장에 대검찰청 간부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변인 홀로 총장 옆을 지켰다. 전국 1800여명 검사를 총지휘하는 검찰총장답지 않았다. 입장하는 데 1분, 회견문 읽는 데 1분, 퇴장하는 데 1분. 딱 3분 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왕따 퇴장'이었다. 회견문에 적은 대로 그는 '표표히' 청사를 떠났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기자회견을 자청해 검찰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논란의 핵심인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와 검찰ㆍ경찰 수사권 조정, 검찰인사 개혁을 약속했다. 자체 개혁을 미루고 거부하더니만 결국 외부의 힘에 의한 대수술을 받게 됐다.

검찰은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기소를 독점한다. 다른 고시(5급 사무관)와 달리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3급(부이사관) 대우를 받는다. 차관급이 정부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54명. 공룡 권력은 막강 권한을 남용하다 자멸했다. 국민과 정의의 편에 서기보다 권력 눈치를 보고 약자에게 오만한 결과다. '벤츠 검사' '향응 검사' '뇌물 검사'로도 모자라 '성(性) 검사' '시나리오 검사' 등 검사 범죄가 시리즈로 터졌다. 급기야 총장의 최측근 대검 중수부장이 주군을 들이받는 하극상까지 벌였다.

끗발로 검찰총장과 비교가 되지 않는 야구선수 박찬호. 그는 검찰총장 회견을 보며 먹먹해진 국민의 가슴에 다시 피를 돌게 했다.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을 거쳐 고국 품에 안기기까지 13벌의 유니폼에는 땀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그의 도전과 열정은 감동적이다. 1994년 LA다저스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가 됐다. 하지만 두 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강속구가 무기인데 제구력이 문제였다. 절치부심 끝에 2년 만에 부활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국민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자신과의 승부에 강했다. 고별 회견에서 스스로 잘 견뎌낸 것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첫승보다 마지막 124승이 더 기뻤다고 회고했다. 그는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내면서도 스캔들 하나 없었다. 난치병 환자를 돕고 야구 지망 유소년의 꿈을 키워주는 장학회를 운영하는 등 야구계 기부 대통령으로 통한다. 그는 19년 프로야구 생활의 마지막 1년을 고향 팬을 위해 뛰었다. 국내에 복귀하면서 그가 모자에 새긴 세 가지 말은 '도전, 열정, 절제'였다.

어디서든 박수 받으며 떠나기는 쉽지 않다. 현역 시절 열정적으로 일하고 은퇴 순간까지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나만 위하지 말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쳇말로 쪽팔리지 않고 물러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기관일수록 박수는커녕 손가락질 받지 않고 떠나는 이를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처음 그 자리를 맡을 때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어느새 약속을 저버린 채 권력과 이권을 탐닉한다. 한동안 대통령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더니만 벌써 몇 대째 대통령 측근과 아들들까지 사고를 쳤다.

한상대 총장과 박찬호 선수가 떠나는 모습에서 대선 주자들은 5년 뒤 자기 모습을 떠올리며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적어도 손가락질 받을 짓은 하지 않겠다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박찬호 선수에게 팬들이 말한다. 당신과 함께한 19년이 행복했다고. 5년 뒤 청와대를 떠나는 다음 대통령은 과연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당신과 함께한 5년이 행복했노라고.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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