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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경영 "'남영동1985' 속 내가 악마? 최민식이 더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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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경영 "'남영동1985' 속 내가 악마? 최민식이 더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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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재범 기자]기억 속 이경영을 떠올렸다. 미소년을 연상시키는 외모에 빼어난 연기력으로 그 나이 또래에선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꼽혔다. 누구나 기억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잘 나가던 그는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댔다. 그 시간이 꽤 길었다. 그리고 간간히 주목할 만한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배역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배우’란 이름을 이어왔다. 그렇게 지워져선 안되는 배우임을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그 사건보단 ‘이경영’이란 이름 세 글자의 의미가 더 강렬했다. 배우는 팬이 있기에 존재한다. 팬들이 원했다. 그렇게 영화 ‘남영동1985’로 이경영은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영화 개봉 직전 이경영과 만났다. 아니 인터뷰 전 ‘남영동1985’ 제작진과의 술자리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지천명(50세)을 넘긴 나이다. 문자 그대로 ‘하늘의 명’을 깨달았는지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흔쾌히 자리를 함께 했었다. 당시 술자리에서의 모습은 약관(20세)의 순수함을 지닌 배우 초년병 시절의 이경영이었다. 참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경영을 다시 만났다.
전날의 숙취가 가시지 않은 듯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들이켰다. 낮은 목소리와 반달처럼 꼬부라지는 눈매부터가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마력을 숨긴 듯 했다. 이런 마력을 설명하자 그는 “내 취향이 남자는 아닌데”라며 농담으로 인터뷰의 시작을 선언했다.

이경영과 ‘남영동1985’가 화제를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고문’이란 키워드 때문일 것이다.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한 영화며, 극중 이경영의 모델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이 모델이란 사실은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전 경감은 고 김 전 의원을 실제 고문한 전직 경찰이다.

이경영은 “내가 맡은 역이 이근안을 모델로 한 이두한이란 인물이다. 혹자는 이근안과 전두한을 합친 인물이라고도 하더라”면서 “실화에 집중한 스토리지만 이근안을 모델로 하지는 않았다. 쉽게 말해 연기 플랜(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고 캐릭터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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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영화 ‘연산일기’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30년을 바라보는 백전노장급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단다. 촬영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물먹은 스펀지처럼 늘어지기 일쑤였다. 그 뿐만 아니라 ‘당하는’ 쪽인 배우 박원상도 마찬가지였다고. 모두 ‘고문’이란 날선 스토리의 도구의 사용했기에, 자칫 잘못하면 관객들에게 거짓으로 보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단다. 때문에 현장에서만큼은 땀방울 하나까지도 전부 쏟아냈다고. 결국 악마 중의 악마 ‘이두한’이 탄생됐다. 문득 강렬함의 연장선에서 볼때 배우 최민식이 떠올랐다. 제목조차 ‘악마를 보았다’ 아닌가.
이경영은 “정말 최민식은 그 부분에선 독보적인 것 같다(웃음). 당시 ‘악마를 보았다’를 보면서도 ‘아 저 자식 저렇게 하면 나머지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너무 잘하더라”면서 “굳이 따지자면 이두한은 악마는 아니다. 그 사람이 악마라기 보단 잘못된 애국심으로 뭉친 사람일 뿐이다. 결과적으론 시대의 권력이 만들어 낸 또 다른 희생자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두한은 공포의 대상이다. ‘고문’을 일종의 행위 예술로 여기며 김종태(박원상 분)의 몸 곳곳을 영화 속에서 재조립한다. 영화 밖에서도 김종태의 실제 모델인 고 김근태 의원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게 고초를 겪었다. 영화로 한정해 보자면 김종태와 관객들에게 이두한의 악마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잔인한 고문이 아니다. 조용히 입으로 불어댄 휘파람 소리였다. ‘클레멘타인’을 부르는 휘파람 소리가 이처럼 소름끼치게 들린 적도 없었다. 관객들에게도 단연 화제다.

이경영은 “영화를 본 지인들이나 촬영 당시 현장 스태프들도 당분간 클레멘타인은 못들을 것 같다고 하더라”면서 “현장에선 일종의 집단 최면 상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촬영을 끝내면서 입으로 휘파람을 불면 스태프들이 나서서 ‘제발’이라며 말리더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몰입한 영화 속 이두한 캐릭터는 당분간 한국영화에서 나오기 힘든 악마 중에 악마로 영화팬들에게 각인됐다. 그 역시 너무도 몰입한 나머지 실제를 분간키 어려운 순간도 몇 번 있었다고 한다. 이경영의 말을 빌리자면 ‘이두한에게 빙의’된 순간이었다. 특별한 순간을 꼽아달라는 말에 “딱 한 번 있었다”고 한다.

이경영은 “김종태가 상관(문성근) 앞에서 자신이 한 모든 자백을 부인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이두한의 캐릭터가 극적으로 변한다”면서 “김종태의 옷을 모두 벗기고 개처럼 취급한다. 이 장면은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다. 한 영혼을 철저하게 짓밟는 장면이다. 이 때 이두한 역에 완전히 빙의됐었다. 더 세게 표현을 하지 못한 게 좀 아쉽다. 그런 말을 정 감독께 드리니 ‘너 그러면 한국에서 못 산다’고 하시더라(웃음)”며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의 미련은 물론 단순히 배우로서의 그것이었다. 반대로 흔들린 순간은 없었을까. 김종태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낀 순간 말이다. 잠시 생각에 빠진 이경영은 역시 “딱 한 번 있었다”고 특별했던 그 순간을 꼽았다.

그는 “고문을 하던 중 원상이 얼굴을 봤는데 딱 한 번 그 눈빛이 흡사 강아지 눈처럼 보였다(이경영은 애견 마니아다). 그 눈빛에 순간 연기가 아닌 정말 마음이 흔들렸다. 당혹스럽더라”면서 “정말 박원상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후배를 추켜세웠다.

촬영 기간 동안 김종태역의 박원상을 신나게 괴롭혔다. 아마도 앞으로의 연기 생활 동안 이런 배역도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가 말할 정도다. 그 역시 박원상의 연기를 보고 “저걸 어떻게 사람이 하지”란 생각마저 했다니 말 다한 것 아닌가. 그래서일까. 한 때 박원상이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에게 진지하게 이경영과 배역 교체를 제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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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영은 “정말 원상이가 진지하게 감독님께 의논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난 다이어트 할 자신이 없었다.(웃음) 무엇보다 눈이 많이 탁해졌다”면서 “원상이에게 ‘네가 맡은 배역 중 가장 높은 직급이 뭐냐? 장관까지 이번에 해보자’며 설득시켰다. 결과적으론 나나 원상이나 감독님이나 지금의 포지션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경영이 연기한 이두한이란 캐릭터나 ‘부러진 화살’의 화제성을 이을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란 점.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등 ‘남영동1985’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을 상당히 뜨겁다. 더욱이 불미스런 사건 이후 언론 노출에 극도의 민감함을 보이던 그가 이번 영화로 다시 대중들과의 스킨십에 나섰다. 물론 작품 활동은 계속돼 왔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는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시점이다. 이에 대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분명 있다. 이경영도 이런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여러 후배 감독이나 언론이 나를 불러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정 감독님이 내 멘토 역할을 해주셨던 것도 그렇고. 이번 영화 출연 제의를 하시면서 ‘이제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라. 본격적으로 충무로에 원대 복귀하는 작품으로 이번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하시더라”면서 “영화가 공개된 뒤 여러 자리에서 여러 동료들에게 뜨겁고 진심어린 격려와 환대를 받았다”고만 말했다.

이경영은 “영화란 숲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날 언제든 받아줄 곳을 남겨두고 있더라. 이제 숲에 돌아왔으니 내가 잘 자라는 일만 남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충무로에선 ‘이경영이 출연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급부상 중이다. 데뷔 30년 차에 가까운 이 배우의 쓰임새가 뒤늦게 터진 것 아닌가.

그는 “그냥 고마울 따름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 용산참사를 다룬 ‘소수의견’도 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그린 ‘26년’과 올해 초 ‘범죄와의 전쟁’을 만든 윤종빈 감독의 ‘군도’가 내년 3월쯤 촬영에 들어간다. 얼마 전엔 장준환 감독과 술을 한잔 하다가 10년 만에 작품을 찍는다며 출연을 제의해 특별 출연 형식으로 ‘화이’란 영화에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작품에 출연한다”며 멋쩍어 했다. 조만간 백발의 멋드러진 머리도 빡빡 밀고 나올 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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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의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김민종과의 작품 활동 계획은 없을까. 1996년 자신이 감독까지 겸한 ‘귀천도’에서 함께 한 동생이자 친구이며 지금까지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격이다. 그는 ‘동반자’란 말에 손사래를 치며 “김민종과 사귀어서 이혼했단 소문도 있었다. 그런 소리하면 큰일 난다”고 웃었다. 다만 “민종이와 함께 출연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우리처럼 한 물 간 배우 두 명을 어떤 감독이 쓰겠냐”며 다시 손사래다.

배우 이경영, 끔찍한 이두한의 얼굴은 분명 연기였다. 그냥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가 배우 이경영의 진짜 얼굴인가 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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