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F 8000억달러 유치? 속사정은 '아이구머니'
아직 좋아하긴 이른, 기금정치학
GCF는 환경분야 기구
재원지분 커도 힘 못써
선진국, 모금에 심드렁
이달 말 조달방안 확정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8000억달러를 모아 후진국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 돕는다.'
최근 인천에 사무국을 유치하기로 한 녹색기후기금(GCF)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어마어마한 돈의 규모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유치기념행사에서 "지금부터 1차로 1000억달러를 모으고 그 이후에도 기금을 모은다"고 말했다.
기금을 모으자는 데는 전 세계가 뜻을 같이 했지만 어떻게 모을지, 얼마나 모을지 아직 합의를 본 건 아니다. GCF의 기본적인 성격과 구조를 감안하면, 기금을 모으는 일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치가 확정된 지난달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GCF를 "환경분야의 세계은행(WB)"이라고 설명했다. WB는 융자 프로그램을 가동해 개발도상국 경제를 에너지 분야 중심으로 지원한다. GCF는 개도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탄소를 줄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WB는 어느 나라가 재원을 많이 출연한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갖는 구조가 아니다. GCF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GCF의 기금 확보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통상부의 손성환 기후변화대사는 "재원을 어떻게 조성할지 합의하는 일은 모든 환경협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행수단"이라며 "선진국과 개도국 간, 선진국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홍식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한 언론 기고에서 "현재 선진국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재원 조달과 개도국의 재원 사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조하는 반면, 개도국은 선진국의 추가적ㆍ의무적 재원 조달과 그에 대한 모니터링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진국들은 출연한 돈에 비례해 권한을 주는 국제기구에는 지분을 키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반면 개도국과 지구를 위한 사업에 돈만 내는 곳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는 WB가 추가재원 모금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다시금 확인됐다. WB는 2010년에 추가재원 862억달러를 모으려고 했지만 호응이 없어서 결국 회원국들로부터 각각 해당 통화를 받고 말았다.
유엔(UN)에 대한 미국의 시큰둥한 대응도 국제기구의 정치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으로서는 국제관계에서 유엔의 도움을 받거나 제지될 일이 없다. 이라크를 공격할 때처럼 반드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는다. 유엔 자체에 큰 힘이 없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1990년대 이후 유엔 분담금을 체납한 배경이다. 당시 미국은 "분담금 비중을 줄여 달라"며 '항의' 차원에서 돈을 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2000년대 들어서 유엔의 예산분담금 비중을 25%에서 22%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 지분만큼 힘을 쓰는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의 '분담금 정치학'은 WB나 GCF에서와는 자못 다르다. IMF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 몫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미국은 자국에 할당된 쿼터를 놓지 않기 위해 백방 애를 쓰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2010년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협상에서 IMF 지배구조 개혁이 주요 화두였다"며 "미국은 자국이 추가로 지분을 양보하는 건 생각할 수 없으며 유럽이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전했다.
당시 협상에 참여한 김 국장은 최근 낸 '누가 협상 테이블을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미국은 자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미국 지분이 많은 게 아니다"는 논리를 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의 지분을 줄이고 개도국의 지분을 늘리는 IMF 개혁안이 당초 올해 발효 예정이었다가 늦춰진 점도 같은 맥락이다.
GCF 기금의 전체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8000억달러로 알려진 것은 하나의 구상일 뿐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개도국들은 당장 내년부터 2020년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매 해마다 1000억달러씩 돈을 모아 기금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며 "반면 선진국 사이에선 2020년까지 모두 1000억달러만 모으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 외로 GCF의 기금 조성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허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국가에만 일방적으로 규제를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불균형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라도 선진국이 기금을 조기에 조성해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과거 황사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황사펀드가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적이 있듯 기후변화가 인류생존에 직접 위협을 가하는 문제로 부각하면서 (기금조성에) 추진동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원의 규모와 조달방안을 확정하는 일은 이번 달 말 카타르에서 열리는 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거론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사무국을 맡은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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