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파워女星<18>] 내이름 '유지은'이 최고자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파워女星 임원 꿰찬 1세대 그녀들의 Success Diary]
<18> 유지은 BNP파리바증권 전무

여성 1호 펀드매니저 출신
올 블랙 정장에 스모키화장 튀어보인다고?
난 오버하지 않는 ELS 스타일
주식과 증권 차이도 모르던 때 삼성증권 운용팀 파격배치
회사는 박사보다 노력파를 원한다

자존감 버리면서까지 무리하지 않아
일과 가정, 우선순위는 따로 없다
중요하고 급한 게 먼저

[파워女星<18>] 내이름 '유지은'이 최고자산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아주 해묵은 퀴즈 하나. 내 것이지만 남이 주로 쓰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듯 정답은 '이름'이다. 이름은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 통성명을 하는 자리나 정치인들의 선거유세 현장 같은 특수상황을 제외하면 일상적인 대화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지은 BNP파리바증권 전무는 달랐다. 인터뷰 내내 본인의 이름을 되뇌이고, 강조하고, 끄집어냈다. 처음엔 마케팅 담당 임원이라 자기 PR도 능숙한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다른 패턴이 보였다. 유 전무는 굵직한 결정이나 특별한 경험의 배경에 대해 얘기할 때 어김없이 본인의 이름 석자를 내걸었다.
그는 BNP파리바증권에 지난해 9월 입사해 파생상품부 전무로 재직하고 있다. 주가연계증권(ELS),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파생상품을 마케팅하는 게 주 업무다.

1994년 삼성증권에 입사한 이후 국민은행과 씨티은행, 맥쿼리 증권을 거쳐 이곳까지 왔으니, 19년이란 긴 시간동안 자리는 다르지만 항상 돈의 흐름을 쫓아왔다. 종목이나 상품을 선택하고 투자하는 과정은 일상과도 같았지만, 쉽게 느껴지거나 권태로워진다면 곧 위기가 찾아온 다는 걸 유 전무는 알고 있었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권에서 이름 석자는 목숨처럼 지켜야 할 자산이었다.

◆삼성이 붙여준 이름.. '여성 펀드매니저 1호' = 1994년, 대학졸업과 함께 유 전무가 삼성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을 무렵은 국내 대기업들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때다. 중소기업들은 공식적으로 여성인력을 채용하지도 않았다. 더불어 증권사 역할에 대한 인식도 미미한 때였다. 모든 여론의 진원지 '엄마친구'들은 증권회사에 다니면 시집 못 간다고 그와 그의 부모를 말릴 정도였다. 그 가운데 삼성그룹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공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게 바로 유 전무다.

1994년은 그룹공채로 사람을 뽑던 삼성이 계열사별 모집으로 채용방식을 바꾼 첫 해다. 중공업이나 화학, 전자전기 등 가운데 증권을 선택한 유 전무는 삼성증권의 주식운용팀에 배치됐다. 이 운용역은 증권사 자기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격이다.

유수의 인재들이 모두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지만, 회사는 뜻밖에도 식품영양학과 출신인 유 전무를 그 자리에 앉혔다. 게다가 대외적인 마케팅에도 적극적이었다. "최초의 여성 펀드매니저가 삼성에서 탄생했다". 입사 직후 본의 아니게 그는 '여성 펀드매니저 1호'라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공식 직함은 아니었지만, 직접운용에 여성인력을 투입시켰다는 건 당시로서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여성에 대한 지지를 대외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유 전무 개인에 대한 기대가 없을 리 만무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어깨에 올려둔 무거운 책임감에, 사회초년병 유지선은 출발부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맡은 일에 대해 자존심, 그리고 이름을 걸고 전력질주 하는 그의 업무태도는 습관처럼 굳었다. 그렇게 '1호 여성'이라는 꼬릿말은 그의 남다른 책임감과 자존감의 배경이 됐다.

◆모든 회사가 '박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 "주식이랑 증권이 뭐가 달라요?" 입사 직후 유지은 사원이 한 첫 질문이었다. 그만큼 증권에 대한 이해가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식품영양학과에서 4년 간 화학이나 생리학 수업만 들었고, 경영ㆍ경제학 수업에는 관심조차 가져본 적 없었다. 당시 인사담당 이사 마저도 그에게 "경제학 수업 하나 안 듣고 어떻게 증권회사에 지원할 생각을 했느냐"고 질문했을 정도다.

유 전무의 답은 당돌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대학졸업자의 지적능력으로 이해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나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만 경제활동을 하는게 아니잖아요. 저 공부 열심히, 잘했고, 서울대 나왔습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렵고, 밥먹 듯 실패를 경험하는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그의 셈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대부분 입사 전부터 주식시장에 관심을 쏟던 상대 출신 동기들 가운데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경쟁하긴 쉽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채권론, 투자론, 회계학 등 대학서적을 뒤적이며 기본을 다져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비 전공자가 못할 일이 아닐 것'이라던 유 전무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아니 오히려 비전공자의 성과가 더 좋았다. 전공자가 장부나 차트를 더 빨리 이해할 수는 있어도, 산업을 이해하거나 성공적인 매매를 하는데 '꼭' 유리한 건 아니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비 전공자가 용어나 기술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단 다양한 산업에 대한 이해와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 투자자들의 투자심리 파악 등이 더 중요해요. 경제학과를 졸업한 실무자가 화학업종 리서치를 맡는다면, 주기율표부터 외워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다른 직종, 직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는 후배들에게도 강조한다. "회사는 박사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대부분의 직군에서, 대부분의 업무들은 박사를 요구하지 않아요. 사실 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세상 대부분의 일은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경험자의 결론입니다.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택해야 한다는 논리에도 동의하지 않아요. 그에 대한 유불리를 따지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예요."

◆애인과 헤어져도 시험공부.. 난 'ELS'같은 여자= 올 블랙 정장에 스모키 화장을 하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언뜻 봐도 상당히 세련된 여성이었다. 소싯적 돌발행동 깨나 하고, 남자도 좀 울려봤을 것 같은 인상이다.

그러나 유 전무는 의외로 모험이나 감정소모를 꺼리는 타입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건, 어릴 때 무언가에 깊이 심취하거나 앞뒤 재지 않고 '좌충우돌'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라는 그다. 일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할 만큼 아주 힘들었던 적도, 이 일이 적성에 너무 맞는다며 희열을 느꼈던 기억도 없단다. 인터뷰 말미 취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전 어딘가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에요. 대학시절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뒤에도, 바로 있을 시험을 준비하느라 공부에만 몰두했을 정도니까요. '연애는 지나가지만, 성적은 남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갈등과 변화가 있었지만, 한번도 그 파동이 과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적은 없어요. 요즘 생각해보면, 파란만장함은 없었지만 그저 하루하루가 치열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것 같아요."

듣다보니 이 사람, 본인이 마케팅하고 있는 ELS와도 닮아있다. ELS는 특정 종목이나 지수의 변동에 따라 만기 지급액이 결정되는 구조의 투자상품이다. 여러가지 구조가 있지만, 천장과 바닥을 정해주고 그 안에서 지수가 움직일 경우 약속된 금리를 원금과 함께 지급하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이겨내지만, 과하게 뛰어오르거나 고꾸라지는 법이 없었다. 주변의 기대치, 직함이 가지는 필요 충분의 역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무리한 도전은 하지 않았다.

◆일ㆍ가정ㆍ육아.. 우선순위는 없다 = 유 전무에게 취미가 없는 것은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에 대한 일정 정도의 부채의식에서 비롯됐다. 스트레스 해소나 즐거움을 위해서 내놓을 개인시간이 있다면, 아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없다. 자신처럼 직장인이자 엄마, 아내, 딸, 며느리 노릇을 모두 해내야 하는 주변인들에게도 유 전무는 '우선순위를 따로 두지 말라'고 강조한다.

"중요하고 급한 게 우선입니다. 일 다음이 육아, 그 다음이 집안일, 이렇게 우선순위를 정해놓을 필요가 없어요. 그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모든 게 스트레스가 되죠. 물론 아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은 있어요. 요새는 '엄마 책도 썼어? 주식이 뭐야?'하는 질문이 늘어서 제 일에 대해서 시간 나는대로 설명해주곤 합니다. 이제 10살이긴 하지만, 나중에 투자은행에서 일하겠다는 포부까지 생긴걸 보면 제가 사회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뿌듯해요."

유 전무의 부모가 그랬듯, 그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큰 기대를 품지 않으면, 누가 그 아이의 그릇을 키워주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희 아버지는 출장에 다녀오시면 제게 인형 뿐만 아니라 제도판, 공구세트, 자동차 같은 아주 다양한 선물을 사다주셨어요. 남자처럼 키우신 것도, 그렇다고 여자처럼 키우신것도 아니죠. 그러나 제가 뭘 하든 항상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여기고, 어떠한 경우에도 불안감을 보이지 않는 일관된 모습이셨죠. 저도 제 아들 태우에게 그렇게 하려고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의외로 굴곡 없는(?) 본인의 스토리 때문에 기사 작성에 문제는 없을 런지 기자를 대신해 걱정해주기도 했다.

"남들이 아무도 못했던 걸 해냈다거나, 업계 최초의 업적을 세웠다거나하는 어마어마하고 특별한 성과가 제게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고, 결과적으로 시장 성장에 도움이 되고, 유지은이라는 이름을 내세울 수 있을 만큼 20년 가까이 낙오하지 않고 일해 온 게 전부예요. '유지은이 맡으면 잘 할거야' 하는 기대를 받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마무리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줄기차게 울렸다.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비워뒀다고는 하지만, 유 전무를 찾는 사람은 많았다. 1년에 40회 넘는 강연을 천명에 육박하는 투자자와 시장참여자들 앞에서 해내는 그다. 유 전무가 강조했던 그 '이름 석자'는 높은 곳에 걸지 않아도 이미 눈에 띄게 빛나고 있었다.



김현정 기자 alphag@, 사진= 윤동주 기자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