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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女星⑮]남자들 군대 얘기 듣기 싫다고? 협업·희생 벤치마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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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女星 임원 꿰찬 1세대 그녀들의 Success Diary]
⑮박정림 국민은행 웰스 매니지먼트 본부장

일하는 젊은 여성 대부분이
조직의 수직적 문화
남성들의 성공인자 인정 못해
잘못됐다 지적하면 '내가 뭘'
선배로서 충고 한마디하자면
여자들이여
제발 대인배가 돼라

[파워女星⑮]남자들 군대 얘기 듣기 싫다고? 협업·희생 벤치마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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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아휴, 안녕하세요."

박정림 국민은행 웰스 매니지먼트(WM) 본부장은 인사할 때 습관적으로 허리를 낮췄다. 기자에게 뿐 아니라, 앞선 사진촬영을 위해 로비로 내려가는 동안 마주치는 모두에게 그랬다. 간단한 목례로 대신할 법도 한데, 기자가 의식할 수 있을 정도의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지나친 겸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묘하다. 건물 관리인과 엘리베이터 안내원, 국민은행 선후배 동료 등 인사를 받는 쪽도 으레 있는 일인 양 반응한다.

박 본부장의 첫인상은 그렇게 굳어졌다.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밴 사람. 한강이 저 멀리까지 보이는 훌륭한 통유리 사무실에서 부자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는 그는 성공한 여성이 흔히 보이기쉬운 거만함이나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극적이고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일하자고 스스로 항상 다짐합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애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아침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오늘도 겸손해야지, 잘해줘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나옵니다."

'겸손'이라는 다소 뻔 한 덕목에 대해서 말하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래서 묵직하게 다가온다. 인터뷰 내내 후배들을 위한 조언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박 본부장의 충고들은 농담조차 가볍지 않았다.

◆즐거운 외도를 허락해라 = 20여년 박 본부장의 금융인생에는 눈에 띄는 '외도'가 있다. 증권이나 보험 같이 유사업종도 아닌, 국회의원 비서실 비서관이라는 정치판에 뛰어든 것. 박 본부장은 1992년 정몽준 의원의 비서관으로 2년 간 일했다. 30대에 접어든 나이였고, 당시 여 비서관은 한손으로 셀 정도의 숫자였다. 쉬운 선택일리 없었다.

그렇다고 경력을 위해 계획한 것 역시 아니었다. 훗날을 도모하며 정치적 기반을 만들겠다거나, 든든한 배경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정치란 건 어떤걸까, 입법기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도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비서관으로서의 2년은 그 어떤 경험과도 맞바꿀 수 없는 힘으로 되돌아왔다.

"중량감 있는 의원과 일했다는 배경이 도움됐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 때 알던 공무원이나 기자들과의 관계도 작은 문제에 불과해요. 중요한 건 국회라는 곳에서 어떻게 법이 만들어지고 기업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는지 같은 매커니즘을 알게 됐다는 것이죠. 전체적인 틀을 본다는 건 젊은 나이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밖에도 그는 세계리스크관리전문가협회 임원,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기금정책심의회 위원 등 다양한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지난해 5월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전문지 '아시안인베스터'에서 뽑은 아태지역 자산관리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된 것도 이 같은 이력이 영향을 미쳤다.

"촘촘하고 꼼꼼하게 선택하기 보다는 일단 하고싶은 일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역시 지금이라도 시작하고 싶은게 있으면 해 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다음 생에는 가수나 목수 같은 전혀 다른 일도 해보고 싶어요. 노래요? 저 쫌 해요.(웃음)"

◆남자들의 성공인자를 배워라 = 박 본부장은 농담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옳은 말을 고집했다. 특히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주 객관적이고 깊숙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들이 첫째, 수직적 문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둘째, 남자들의 성공인자(success factor)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남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생활을 거치면서 서열과 협업, 희생같은 자질을 체득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일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못해요. 요즘 어느정도의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들은, 사실 다들 이제껏 '아주 잘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평균이상의 점수를 받으며 인정받아왔는데 누군가 갑자기 '틀렸다'고 하니, 인정할 수 없는거죠."

그 과정에서 상사의 노고가 시작된다는 게 박 본부장의 설명이다. 여직원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잘한 일에 대한 칭찬 ▲잘못한 일에 대한 지적 ▲또 다시 칭찬 ▲지적 당한 뒤의 정서관리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할 정도란다. '일을 계속 할 생각이라면, 제발 대인배가 돼라'. 박 본부장의 경고이자 충고다. 실제 박 본부장의 주변인들은 '대인배'가 많다. 60년대 산부인과 의사였던 모친은 사회생활에 젊은날을 할애하면서 어린 그에게 성역없는 꿈을 심어줬고, 앞서 인터뷰 한 차재연 KT상무나 김정미 제일모직 상무등 업계 굵직굵직한 인물들도 대학시절 같은과에서 함께 공부하던 사이다.

남자들이 왜 조직에서 더 쉽게 상위 직급자가 되는지도 흰눈 뜨고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했다. 능력은 같은데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의식 대신, 조직생활에서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정하라는 얘기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남자들의 저녁문화 같은 겁니다. 정말 술이 좋고 마시고 싶어서 피곤한 몸 이끌고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질까요? 그들 나름의 돈과 시간, 열정, 그리고 인생을 할애하는겁니다. 편한 자리에서의 의견조율이 수십시간의 회의나 몇십장의 보고서를 대신할 수도 있어요. 그 부분을 부정하는 여성들의 불만도 옳은게 아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박 본부장은 술을 잘 마실뿐만 아니라 즐긴다. 소주 두어병 정도는 한 자리에 앉아 마실 수 있는 정도다. 과음으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술자리는 아주 효율적(cost effective)인 기술이란다. 외국계 기업보다는 로컬기업 특유의 문화가 본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간 숱했을 노력과 노련함이 읽힌다.

◆최대 위기는 잘 나갈 때 찾아온다 = 박 본부장은 다양한 자리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이름깨나 날린 인물이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이 많았다. 그가 생각하는 위기는 '잘 나갈 때' 어김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잘 나가면 누구나 '사고 치지 말고 이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죠. 일에 대한 동기부여도, 열정도 없어지는 겁니다. 그때가 바로 인생의 위기인거죠. 게다가 잘 나갈때는 주변의 시기질투가 많아지고, 일이 부풀려지기 마련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삼성화재에서 리스크관리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던 지난 2002년이 박 본부장에게 그랬다. 스스로 느껴질만큼 느슨해지기 시작할 때, 그는 국제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 도전을 결심하고 3년만에 취득했다. CFA는 경제학, 통계학, 재무분석, 주식분석 등의 과목을 3차(3년)에 걸쳐 치르는 시험으로 단순히 결심하고 시간을 들인다고 딸 수 있는 자격증이 아니다.

"시험 전 3개월씩은 주말마다 아주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게 바로 제 위기극복 방법이었어요. 자기개발 노력이 없어졌다 싶으면, 외부활동이나 자격증 도전을 통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한 거죠."

위기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습관은 '비교'를 그만 둔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행복은 없다. 그저 불행만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제게도 '쟤는 재수 좋게 먼저 잘됐다'고 생각하며 볼 때마다 짜증나는 사람이 있었어요. 화나고, 내가 너무 싫어져서 힘들었죠. 그러나 돌아보건대, 비교의 삶을 끊어내는 게 바로 내 삶의 시작입니다. 그러려면 자신감을 가져야해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수시로 생각하는거죠."

◆젊은시절 필요한건 일단 저질러보는 용기 = 후배의 기준을 더 밑으로 내려,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장난스런 말투로 박 본부장은 "소위 말해서 '또라이' 정신이 필요한데, 다들 너무 정답만 말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남자애들 때리고, 노는 재미로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바짝 공부해 서울대 경영학과를 들어간 그다.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는 명문대의 문을 통과하기 어렵다는것도 잘 안다.

"요새는 목표를 정하면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가 아주 명확한 시대예요. 물론 손놓고 있는 경우보다야 훨씬 낫지만, 결과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이나 도전의식이 결여돼있죠. 경영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업가 정신', 제 표현대로라면 '또라이 정신'이 없어요. 모범답안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는 태도도 필요해요."

연봉에 집착해 취업하거나 이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사실 세금 떼고 나면 그다지 큰 돈도 아닌데...". 특유의 농담에도 뼈가 있다.

"좋은 대학 나온 친구들은 금융권 입사하면 머지않아 월스트리트에서 파이낸셜타임즈 끼고 커피한잔 할 수 있을 거라고들 상상합니다. 그런 생활을 하려면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해요. 처음부터 영화 같은 장면을 기대할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견뎌낼'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생활 하다보면 슬럼프나 힘든 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진짜 중요해요.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무르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거죠."

◆2030 재테크 키워드는 '합리적 소비' = 그는 명실공히 재테크 전문가로, 20~30대 여성들의 재테크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요약하자면, "돈을 어떻게 굴릴까 보다는, 어떻게 쓸지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시기"라고 했다.

"20대와 30대는 전 인생에 걸쳐 가장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큰 연령대입니다. 돈을 어떻게 모아서 크게 굴릴까를 생각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돈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게 중요합니다. 누수를 막으라는 얘기예요."

좀 더 깊숙이 들어가서는, 세금관련 우대상품에 능력이 되는 선까지 가입할 것을 권했다. 또한 안전자산 보다는 위험자산, 그 중에서도 일반 주식형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를 추천했다. 주식투자와 관련해서는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는 투자유형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실현하지도 않은 주가상승분의 이익을 미리 소비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기자도 뜨끔해지는 순간이다.

박 본부장과 만난날은 지난 17일, 기자의 여름휴가를 앞둔 금요일이었다. 인터뷰만 마치면 일주일간의 꿈같은 휴가로 뛰어들 수 있었던 터라, 빨리 마치고 퇴근하고픈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박 본부장과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휴가 생각은 머리속에서 진심 사라져있었다. 준비했던 질문과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도 아쉬워 더 할 얘기가 없나 궁리했을 정도다. 박 본부장의 첫인상에 대한 기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성공한 인물이면서도 인간적이었으며, 더불어 아주 훌륭한 인터뷰이(interviewee)였다.



김현정 기자 alphag@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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