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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칼럼]스위스 비밀계좌 역세탁 10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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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부자들이 해외 조세피난처에 빼돌려 숨겨둔 돈이 7793억달러(현재 환율로 880조원)로 추정됐다는 뉴스를 지난 7월 하순 처음으로 접했을 때에는 설마 했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3배에 가깝고 국내 가계부채를 거의 다 갚을 만한 그런 엄청난 돈이 해외로 도피할 수 있다고 믿기 어려웠다. 그것이 유엔이나 국제통화기금과 같은 공적 국제기구의 통계가 아니라 한 영국 시민단체(조세정의네트워크)의 추정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지난달 하순 국세청이 발표한 내국인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 결과를 보고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전체적으로 지난해에 비해 신고계좌 수가 5231개에서 5949개로 14%, 신고금액이 11조5000억원에서 18조6000억원으로 62% 증가한 것은 그럴 수 있으려니 싶었다. 하지만 그 중 스위스 소재 금융계좌 신고액이 73억원에서 1003억원으로 1년 새 14배나 증가한 것은 특이했다. 신고자 수는 한 자리라고 국세청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귀띔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1인당 평균 100억원 이상의 거액을 스위스 비밀계좌에 넣어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 국세청이 스위스 소재 한국인 금융계좌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개정된 새로운 한ㆍ스위스 조세조약이 7월25일 발효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고기간인 6월 스위스 계좌를 신고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왜 지난해에는 신고하지 않았다가 올해 신고했겠는가?

국세청은 납세자 비밀 보호를 이유로 개인별 신원 공개를 거부했지만, 그들은 국내에 뭔가 지켜야 할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개정된 한ㆍ스위스 조세조약 발효는 오래 전 예고된 것이었으니 돈을 그 사이에 다른 조세피난처로 옮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놔두었다가 이번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합법화 절차를 밟아 은닉자금을 역(逆)세탁함으로써 자신의 국내 재산이나 사회적 위신을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한 가지 결론은 그들의 신고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과 달리 국내에 지켜야 할 것이 많지 않거나 뒤가 구린 돈을 스위스 계좌에 넣어두었던 사람들은 돈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 신고의무를 피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스위스 계좌에 수십억~수천억원대의 돈을 넣어둔 한국인이 적지 않았고, 어쩌면 수조원대의 돈을 넣어둔 한국인도 있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스위스 말고도 조세피난처로 활용되는 곳이 세계적으로 수십군데에 이른다. 미국의 일부 주들도 조세피난처 기능을 한다. 이를 고려하면 조세피난처에 은닉된 한국인 자금으로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추정한 880조원은 불가능한 금액이 아니다. 게다가 이 단체의 해당 보고서를 구해 읽어 보니 추정이 결코 허투루 된 것이 아니다. 맥킨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제임스 헨리가 과거의 유사한 추정 사례들을 재검토하고 그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추정모델을 수립한 뒤 거기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데이터를 집어넣어 얻어낸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다.

전체로는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 동안 139개 개발도상국에서 조세피난처로 빼돌려진 돈이 최소 21조달러 이상으로 추정됐다. 그 돈이 외딴 조세피난처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UBS나 골드만삭스 등 선진국 거대 은행들이 관리하고 굴려준다. 그 중에는 국제적 사업망을 갖춘 기업 조직을 통해 빼돌려진 돈이 많을 것이다. 한국(7793억달러)은 중국(1조1893억달러)과 러시아(7977억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빼돌려진 돈이 많은 나라다. 이 방면에서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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