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공연환경 속 '무대미술' 개척한 3인의 흔적
'추억의 그 무대를 만든 이 분들'
그때 그 무대를 기억하십니까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 장, 관객들의 시각을 좌우하는 무대를 디자인 하는 무대미술. 100년이 안된 우리나라 극장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무대미술가는 대본읽기부터 장면해석, 기본 무대 분위기 등 방향잡기, 공연연습 참여, 디자인 결정, 도면·세트 제작과 연출가·배우들과의 무대 조율 등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무대를 책임지는 일을 한다. 그만큼 무대를 꾸리는 일은 작품 전체에 개입하는 일이다.
'무대'가 없이는 '공연'도 없다. 최근 외국 공연계에서는 무대미술가가 직접 연출을 맡는 경우가 일반적인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극예술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연극이란 장르는 연기, 연출만이 부각되지만 실은 그와 동등하게 주요한 부분이 바로 '무대미술'이다.
이런 무대미술의 계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우리나라 '1세대 무대미술가 3인의 기록전시'가 12일부터 오는 12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명예의 전당에서 열린다. 근현대 공연예술의 태동기부터 무대미술에 헌신해 극장 예술사에 전설이 된 고(故) 김정환, 장종선, 최연호 선생의 삶과 주요 작품을 재조명한다.
◆ '무대미술가' 한눈에 살피는 전시장을 찾다= 이번 전시는 작고 무대미술가와 같은 연배인 무대미술계의 거장 이병복 선생(여 88)이 최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무대미술가 이태섭 용인대 연극학과 교수(남 58)에게 제안해 기획된 것이다. 이 교수가 전시기획 총괄을, 그의 제자인 김은영(여 34)씨가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아 준비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예술가의 집에서 만난 이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무대미술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생기고 현재 무대미술가들이 수없이 많이 배출되고 있는데, 미국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나 중국계 미국인 밍초리(Ming Cho Lee)는 알면서 우리 무대미술사의 뿌리를 모른다는 것이 아쉬웠다"면서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작고하신 1세대 무대미술가를 살펴본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영씨는 무대미술가 3인의 지인들과 연극계 인사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해 전시를 준비해왔다. 김 씨는 "한국연극사에 대한 계보정리나 연구가 미흡해 연극사 자체도 기록보존이 잘 안 돼 있는 형편에 무대미술은 더 소외돼 있다"면서 "이번 전시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역사를 되새겨보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전시준비가 대부분 마무리된 명예의 전당 1,2층을 찾았다. 1층에는 극장예술 공간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관객석과 무대, 무대 뒤 분장실이 마련돼 극장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켠에는 체코의 중세 극장공간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과 무대의 배경, 조명들을 오르내리게 하는 플라잉 퍼실러티(Flying facilities) 장치, 각국의 공연무대 조형물 등이 비치됐다.
◆ 무대미술가 1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1세대 무대미술가들의 행적을 도표와 사진, 기록, 인터뷰 영상 등 자료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대미술가 첫 세대들은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돌아오거나 현장에서 기술을 익힌 이들이 많다.
김정환 선생(1912~1973)은 기존 평면 배경막을 거두고 입체적인 무대장치를 선보이며 무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예술가다. 그는 1935년 휘문고 시절 연극 '고골리의 검찰관'으로 처음 무대장치에 입문했다. 미국 예일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무대미술에 대한 기술을 훈련하고 귀국 후 서울 남산드라마센터 설계를 담당하면서 최초 국립극장 미술감독도 역임했다. 전시장에는 그가 제작한 '이동버스극장'이 눈에 띈다. 이 교수는 "1965년 버스위에 공연 무대 장치들을 싣고 전국을 다니며 새마을연극을 하고 다니신 것"이라면서 "유럽 중세 마차극장처럼 동양에서는 처음 선보인 작업 활동"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선생은 한국전쟁 전 주차장이나 밭 주변에 무대장치제작소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동국대와 서울대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며 무대미술에 대한 교육에 헌신하며 살아온 이다. 주요 작품에는 여인천하(1960년), 대춘향전(1964년), 이해랑이동극장(1965년), 오이디푸스(1967년), 원술랑(1970년) 등이 있다.
장종선 선생(1918~1989)은 '무대 디자인'의 조건에서 시대적 고증, 회화적 표현능력, 건축적인 두뇌를 꼽았던 이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꼼꼼하고 회화적인 스킬이 뛰어난 이로 알려져 있다. 방송무대세트 작업에도 진가를 보여 TBC 동양방송국 미술부장으로도 일했다. 전시장에 비치된 그가 그린 세련된 스케치에서는 건축과 사진에 조예가 깊었던 장 선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안네프랑크의 일기(1960년), 만선(1964년), 북간도, 건강진단(1980)년 등이 있다.
가장 많은 무대디자인 작품을 기록한 최연호 선생(1929~1996)은 장종선 선생과 함께 일했다. 총 850여 공연작품에 그가 만든 무대가 소개됐다. 그는 장 선생과 함께 한국적인 무대공간에 대한 정체성을 깊이 고민한 예술가다. 이 교수는 "정력가라고 알려진 최연호 선생은 한 달에 많으면 10건이 넘는 무대작품을 만들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면서 "당시 열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무대미술가가 많지 않았던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강은흐른다(1975년), 피고지고피고지고(1993년), 파우스트(1996년) 등의 무대를 남겼다.
◆무대미술과 더불어 연극계 성장하려면= 공연이 끝난 후 배우도 연출도 사라진 자리에는 무대세트와 의상만이 남는다. 한 공연에 대한 기록물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무대미술가의 선구자 3인의 눈을 통해 한국의 공연예술사를 보편적으로 널리 이해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던 이 교수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는 "1990년대 본격적인 무대미술 작업을 했던 나로서는 마치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는 것처럼 오만한 생각을 해왔다"면서 "선배들의 피와 땀이 담긴 도면, 스케치를 보면서 한명의 디자이너가 일당백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고백했다. 이 교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무대미술을 포함한 공연예술이 그 뿌리와 역사를 알아가고 보존하려는 인식이 커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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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매니저 김은영씨도 공연예술발전을 위해 전공자들의 인력을 이런 기록보존사업에 투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김 씨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부족한 자료와 기록이 적재적소에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방식으로 정리돼 있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면서 "전문성을 가진 전공자들에게 이런 기회를 준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립예술자료원이 공동주최했으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개막식은 오는 20일. 문의 02-76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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