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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정말로 유럽정상회의에서 패자(loser)일까?

최종수정 2012.07.02 10:24 기사입력 2012.07.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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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유럽정상회의를 앞두고 전세계적으로 욕을 먹은 한 지도자가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그녀는 유럽재정위기를 종식시킬, 아님 적어도 현재의 위기국면을 넘길 수 있는 카드를 쥐고 있음에도 메르켈 자신과 독일을 위해 기득권을 버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일부 전문가들은 독일이 그러한 능력을 정말로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막상 정상회의가 끝난 다음에 메르켈은 그동안의 주장을 꺾고 커다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언론은 그녀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최대 '패배자'라고 지목했다.
지난달 30일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의 언론들은 자국의 지도자(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를 압박해 U-턴 시켰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반면 메르켈은 자국 언론들로부터 "유럽 정상회의에서 기습공격 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번 유럽 정상회의는 유로화가 붕괴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의미있는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럽 정상들은 역내 부실 은행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구제금융 기금이 정부를 거치지 않고 은행에 직접 투입될 수 있도록 하고 역내 국채 금리가 치솟을 경우 채권시장에 개입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번 조처로 부채부담에 시달리던 국가들은 은행권 부실을 구제하기 인해 재정이 악화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채권 금리도 낮출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메르켈 총리는 독일에서 일종의 채권(?)국가로서 구제금융 대상 국가들에게 긴축정책과 강도 높은 구조금융 조건 등을 주장하는 인기를 얻어왔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그간의 주장들을 꺾고 남유럽 국가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이같은 그녀의 양보를 두고서 "그동안 '프라우 나인(Frau Nein·미스 노)이 유로화 구하기를 명분으로 했던 그 어떤 것보다 큰 양보를 했다"고 평했다.
메르켈은 왜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용 (Liberation)으로부터 1-0으로 졌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으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순순히 물러섰을까?(당초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정상회담이 당초 예정된 28~29일을 넘어 7월 2일 유럽 개장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정상회담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① 이길 수 없는 싸움터였다

메르켈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순순히 양보한 데에는 첫 번째 이번 정상회담은 그녀가 이길 수 있는 '싸움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스페인 및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긴축정책 등의 원칙을 고수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다. 흡사 전세계 금융시장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압박했고, 이들의 압박을 받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독일을 향해 유로존을 포기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 그동안의 원칙론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았다. 메르켈은 대신 그동안 그렇게 강력하게 반대했던 유로본드에 대해서는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

더욱이 유럽의 정치 지형도 메르켈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동안 메르켈의 가장 큰 동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대신 올랑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메르켈의 입지는 한층 위축됐다. 더욱이 사실상 테크노크라트 총리인 몬티가 집권세력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는 시작했다. 정상회의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할 경우 몬티가 물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여전히 강력한 정치세력을 보유하고 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 공상적 아이디어나 신성모독처럼 취급될 일이 아니다”로 발언하는 등 이탈리아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나오기 시작한 것 역시 메르켈에게는 부담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하는 것과 유로존내 3위 경제인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이탈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악재라면, 이탈리아의 탈퇴는 재앙을 넘어 파멸 그 자체로 그야말로 유로존의 붕괴를 가져올 수 사안인 것이다. 더욱이 이탈리아의 상황이 악화되어 구제금융이라고 받게 될 경우, 현재 유로존의 능력과 구제금융 기금 수준으로는 구제가 불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만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컸다.

② 독일 역시 똥줄이 타고 있다

둘째, 독일의 경제 사정 역시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치인으로서 메르켈의 가장 큰 관심사는 15개월 뒤에 있을 선거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금융 전문가들이 독일 경제가 심각한 하강국면에 직면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독일 경제의 하강압력이 1998년 이후 가장 가파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지멘스,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등 독일의 간판 제조 기업들의 실적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도이치방크, 코메르츠방크 등 독일의 대표 은행들은 신용평가사 무디리스로부터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킬 세계경제연구소 는 "경기침체의 위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세계적인 채권 투자자 빌 그로스 역시 "자신에게 있어서 독일은 신용 위험이 있는 국가로 여겨져,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이라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가 그동안 독일 내에서 탄탄한 지위를 유지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구제금융 국가들에게 강력한 긴축정책을 요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승승장구 비결은 유럽재정위기와 경기침체 속에서도 독일만은 예외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악화됨에 따라 상황이 바뀐 것이다. 유럽의 씽크탱크인 센터포유러피언리폼의 사이먼 틸포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독일 정책당국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에 취약해졌다"면서 "독일의 능력인 과장된 반면 독일의 취약성은 무시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독일이 과감한 개혁에 나서지 않을 경우 독일 경제의 경제 성장이 2019년까지 1.5 를 넘지 못할 것이며, 2020부터는 1%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독일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미래상이다. 이 때문에 메르켈로서는 그동안 강조해왔던 긴축정책 기조의 정책에 일대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더욱이 메르켈의 정치적 입지도 과거처럼 탄탄하지 못하다. 1일 시카고 트리뷴은 한네로레 크라프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가 메르켈의 강력한 맞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이 인용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크파프트 주총리의 인기덕에 독일 최대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의 인기 역시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에서 크라프트는 메르켈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요하임 가우크 독일 연방 대통령이다). 현재 SPD의 지지율은 32%로 2009년 총선 당시에 비해 9% 이상 상승했다. 이에 반해 메르켈총리의 기독교민주당(CDU) 및 자매당인 기독교 사회연합(CSU)는 지지율이 35%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연정상황을 생각했을 때 SPD는 13%의 지지율을 얻는 녹색당과 연정구성시 47%의 지지를 확보하게 되는 반면, 현재의 집권연정인 CDU, CSU 그리고 4% 대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을 합할 경우 39%에 머문다. 그나마 집권당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메르켈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지지인데,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경우 국민들은 집권당을 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크라프트는 내년 선거에서 총리직을 두고 메르켈 맞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크라프트의 돌풍은 분명 메르켈에게는 불안요인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독일이 유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상회담을 빌미로 독일의 긴축 기조의 정책을 성장 중심으로 돌리는 전기가 될 수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③악마는 각론에 있다

셋째, 독일이 총론에서 양보했지만 각론에서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나온 결론들이 분명 예상밖의 획기적인 결과인 점은 분명하지만 중장기적인 대책들이 빠져 있으며(이것들은 다음 12월 정상회담으로 미뤄졌다) , 각각의 대책에는 전제조건들이 달려 있다. 예를 들면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은행에 직접 자금지원하기 위해서는 구제금융 받는 나라가 "재정적자 감축과 개혁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이행"해야만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더욱이 구제적인 지원의 시점을 "연말까지 유로존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마련한 뒤"로 하고 있다.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서 쟁점이 오갈 수 있다는 점이다. 총론에서 양보해 각국에 명분을 안겨준 독일이 각론에서는 양보의 대가를 요구하며 실리를 챙길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EU가 발표한 긴급 금융안정대책과 관련, 세부적인 내용은 좀 더 조정해 개별적으로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뒀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부채와 관련한 세부적인 내용을 개별적으로 협의해야 한다"며 "독일 의회가 ESM이 어떤 곳의 자본확충에 쓰이는지 모든 앞으로의 사례에 대해 표결할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론으로는 동의해도 각론에서는 반대할 수 있으며, 의회 표결권을 바탕으로 뒤짚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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