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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리더學]성급한 혁명가는 뚝심의 정치가를 못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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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리더④ 반란군 묘청과 진압군 김부식

어떤 집단이나 사회든 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은 있게 마련이다. 묘청과 김부식이 살았던 시기는 고려가 안팎으로 커다란 위기에 휩싸여 있던 때다. 지배계층에서는 대를 이어 특권을 누려온 문벌귀족과 신진관료의 대립이 심화됐고, 중국에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거란과 북송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고려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도읍을 서경(西京ㆍ평양)으로 옮겨 민심을 수습할 것을 주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했고, 개경에 기반을 둔 구 귀족세력은 크게 반발했다. 두 세력의 중심에서 맞섰던 인물이 바로 묘청과 김부식이다.
[포커스리더學]성급한 혁명가는 뚝심의 정치가를 못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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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출신의 승려인 묘청은 인종을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경은 이미 왕기(王氣)가 쇠(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도읍을 서경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려도 임금을 황제라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이후 1128년(인종6년) 인종이 서경에 대화궁을 짓는 등 천도계획을 구체화하자 개경의 구귀족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묘청 일파는 대동강에 속을 비운 떡을 띄우고, 인종이 서경에 행차했을 때 '공중에서 좋은 음악이 들린다'고 말하는 등 여러 술수를 썼고, 후에 이 것이 거짓으로 밝혀져 궁지에 몰리게 된다.
개경파의 반대로 천도계획이 차질을 빚자 묘청은 무장봉기를 일으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했다. 묘청 세력은 왕의 조서를 위조해 막료들과 각 성의 수장들을 서경 소금 창고에 가두고, 병력을 동원해서 인근의 말들을 강제로 징발,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대위(大爲)라는 나라를 세워 연호를 천개(天開), 자신들의 군대를 천견충의군(天遺忠義軍)으로 불렀다. 후일 '묘청의 난(인종 13년)'이라 불리게 된 사건이다.

김부식은 이 때 삼군(三軍) 원수가 돼 '묘청의 난' 정벌에 나선다. 역사책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은 대대로 경주에 기반을 두고 살았던 집안 출신이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유학자인 그는 절대 권력자의 일이라 해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반대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출정에 앞서 묘청과 내통해서 반역을 꾀한다는 누명을 씌워 개경에 있던 서경 출신 정지상, 김안, 백수한 등을 참살한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인종에게 보고했다.
막료들은 김부식에게 '반란군의 방비가 튼튼해지기 전 속전속결로 반란군을 진압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천천히 진군하며 격문을 돌려 백성들을 회유하고, 서경에 이르러서도 성을 포위한 채 장기전에 돌입했다.

이듬해(1136년) 2월, 마침내 총공격 명령이 내려지며 양측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부식은 묘청이 부하 조광에게 살해되며 가까스로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서경 천도 운동으로 시작해 무장 봉기로 이어진 묘청의 개혁 운동은 그렇게 보수파의 승리로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김부식이 문신이면서도 삼군 원수가 돼 묘청의 무장 봉기 토벌 선두에 선 것은 물론 자신의 권력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또 막료들의 속전속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구전을 펴면서 적이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도록 한 것도 문신답지 않는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출정에 앞서 개경에 있던 정지상 등 서경파를 임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제거한 것이나, 그 후에 보여 준 행동들은 대학자요, 문장가답지 않은 야비하고 냉혹한 성품을 드러낸다. 그가 서경파를 서둘러 제거한 것은 토벌군을 이끌고 떠난 뒤 인종이 그들에게 설득당해 서경 천도 쪽으로 마음이 바뀔까 염려한 측면도 있지만, 평소 눈에 가시 같던 서경 출신들, 특히 정지상을 시기해 제거한 측면도 없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정인지 등이 쓴 '고려사'의 '묘청전'에도 "김부식과 정지상은 평소 글에서 명망이 비슷했으므로, 김부식이 불만을 품고 묘청과 내통했다는 구실로 살해했다"라고 남겨져 있다. 김부식은 정지상을 참살한 후 그의 자녀들 몸에 '서경역적'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후 종으로 삼기도 했다.

신채호는 서경천도 운동을 '조선의 역사 1000년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가 어떻든 객관적인 사실에서는 김부식이 승자, 묘청은 패자가 됐다. 김부식은 묘청의 무장 봉기를 평정한 후 인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권력과 부를 누리다 일흔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묘청은 승려 출신이지만, 불교는 물론 민간신앙과 노장 사상까지 어우르는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시 고려는 집권층의 무능과 경제적 착취로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묘청은 이를 개혁하려했다. 그러나 서경 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종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 가지 술수를 썼고, 방법론에 있어 성급함이 넘쳤다.

서경천도 계획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고 해서 성급하게 무력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진해 나갔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묘청 일파가 동원한 술수들도 개혁주의자로서 온당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집단이나 사회든 바꾸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은 있게 마련이다. 이 경우 묘청의 실패는 어떻게 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섣부른 개혁, 성급한 개혁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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