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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태준의 '누가 울고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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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잘그랑거리다/눈이 그쳤다//나는 외따롭고/생각은 머츰하다//넝쿨에/작은 새/가슴이 붉은 새/와서 운다/와서 울고 간다//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울고/갈 것은 무엇인가//울음은/빛처럼/문풍지로 들어온/겨울빛처럼/여리고 여려//누가/내 귀에서/그 소릴 꺼내 펴나(......)

■ 이 시를 읽으면 정지용의 냄새가 난다. 하기야 이 땅의 시적 영혼을 지닌 사람치고 '정지용키드'가 아니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슴이 붉은 새 한 마리의 울음.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린 소리. 진짜 들렸는지 새의 부리가 움직이는 이미지가 울음으로 번역된 것인지 희미한 빛같이 마음의 지창(紙窓)에 비쳤던 그 소리는, 얼핏 사라진 듯 했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이 대목에서 숨이 턱 막혔다. 소리는 사라졌는데, 다시 들리는 저것은 누가 내게 가만히 다시 펴주는 소리인가. 우리의 청력과 기억력이 곧잘 지나쳐버리는 아주 낮고 사소한 음역의 바로 그 소리이다. 붉은 가슴 새의 소리를 리플레이하면서 시인이 듣는 소리는, 자기 곁에서 저렇게 울고는 떠나버린 어떤 사람의 사라진 소리이다. 세상에는 이미 없는 소리, 내 가슴 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든, 내 곁으로 영원히 울고 지나가고 있는, 당신의 희미한 소리.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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