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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를 ‘BK’답게...김병현의 선발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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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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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김병현은 불펜이 제격이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감독과 프레디 곤살레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등의 단언이다. 두 감독은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시절 소속팀이던 콜로라도 로키스와 플로리다 말린스의 수장이었다. 김병현은 잇단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차례에 걸쳐 선발투수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2007년 3월에는 허들 감독의 불펜 기용 방침에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지 매체를 통해 밝힌 뜻은 분명하고 완강했다.
“밥 애포대카 투수코치의 ‘투심을 던져라’, ‘체인지업을 구사해라’ 등의 주문을 모두 이행했다. 이제 와서 불펜으로 내려가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선발투수로 뛸 수 있는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에이전트에게 요청하겠다.”

복장은 뒤집힐 만 했다. 김병현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2005년 콜로라도와 1년간 연봉 125만 달러의 헐값 계약을 체결했다. 그 바탕에는 선발투수 출전을 보장받는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콜로라도가 말 바꾸기로 약속을 깨버린 셈. 결국 그는 2007년 5월 14일 호르헤 훌리오와의 일대일 트레이드를 통해 플로리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로부터 약 4년 8개월이 흐른 지난 1월 18일 김병현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계약금 10억 원, 연봉 5억 원, 옵션 1억 원 등 총 16억 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이틀 뒤 열린 입단 환영식에서 그는 보직과 관련해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선발투수 혹은 불펜.” 옆에서 이를 경청한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는 “올 시즌은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스포츠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병현의 올 시즌 성적은 기대하지 않는다. 내년을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역할은 있지만 전적으로 김시진 감독이 정해야 할 일이다.”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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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수 야구관계자들은 바로 포지션을 선발투수로 전망했다. “올 시즌은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이 대표의 발언이 주 근거였다. 당시 한 관계자는 “선발 수업을 받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2013년 우승을 노리는 넥센에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 욕심을 드러냈던 김병현이 프로야구에서 굳이 불펜으로 옮길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김병현은 입단 4개월 만인 지난 18일 목동구장에서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는 ‘국민타자’ 이승엽 등이 포진한 디펜딩챔피언 삼성. 투구는 비교적 무난했다. 4.2이닝을 3실점으로 틀어막았다. 김병현은 자신의 투구에 70점을 매겼다. 30점의 아쉬움은 투구 수, 제구 등에 있었다. 이날 김병현은 팀이 4-2로 앞선 5회 2사 마운드를 내려왔다. 아웃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출 수 있었던 셈. 하지만 김 감독은 투구 수가 96개(스트라이크 61개, 볼 35개)에 달하자 주저 없이 마운드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 타선을 두 바퀴 반 이상 돌았을 때였다.

허들과 곤잘레스 감독이 김병현을 불펜에 두려 한 건 공이 타자들의 눈에 익기 쉽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둘은 “슬라이더, 직구에 비해 체인지업, 커브 등의 완성도가 떨어져 타순이 세 번 돌면 당하기 쉽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 감독이 5회 교체를 서두른 배경은 달랐다. 경기 뒤 그는 “투구 수가 100개가 넘어가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1승도 중요하지만 앞으로가 더 그러하다”라고 설명했다. 김병현은 더 이상 젊지 않다. 올해 나이는 33살이다. 더구나 지난해 둥지였던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마운드에 오를 기회는 미미했다. 사실상 최근 2~3년 동안 정상적인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다. 이 대표가 입단 환영식에서 “올 시즌은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주된 이유다.

김병현은 긴 공백을 4개월 만에 비교적 훌륭하게 메웠다. 물론 더 두고 볼 일이다. 김 감독은 “김병현의 근육이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며 “정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은 회복력이 충분히 돌아왔을 때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병현의 선발 전환은 프로야구 무대에서 계속 통할 수 있을까. 김병현은 첫 선발등판에서 포수 허도환과 배터리를 이뤘다. 경기 뒤 허도환은 투구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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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 수가 다소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공에 힘이 넘쳤다. 제구도 잘 됐고. 시속 145km의 직구는 꽤 묵직했다. 슬라이더, 커브 등 변화구의 움직임도 예리했던 것 같다. 타자들의 헛스윙을 이끌어내기 충분해 보였다. 국내 타자들이 공략하기 힘든 볼을 던졌다.”

하지만 허들, 곤잘레스의 단언대로 김병현은 회를 거듭할수록 다소 고전했다. 김병현은 1회와 2회 각각 5명(2안타)과 4명(1안타)의 타자를 상대했다. 타순을 한 바퀴 돈 뒤인 3회는 6명(1안타1볼넷1사구)이었다. 하위타선을 맞은 4회를 4명(1볼넷)으로 매듭지었지만 5회는 4명(2안타)을 상대하고도 2아웃을 잡는데 그쳤다. 이닝이터는 물론 효과적인 피칭을 보여줬다고 보기 어려운 주된 이유다. 실제로 김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나선 87경기에서 25승 35패 평균자책점 5.07을 기록했다. 구원투수로 출전한 307경기에서는 29승 25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3.58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피안타율. 릴리버로 0.204를 기록했지만 선발투수로는 무려 0.277이었다. 허들, 곤잘레스의 주장이 결코 빈말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김병현의 선발 첫 무대를 어떻게 보았을까.

“볼이 힘도 있었고 스트라이크존으로 잘 들어갔는데 재방송을 다시 보니 실투가 좀 많더라. 왼손 타자를 상대로 힘들다고 느껴지면 어떤 볼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지 본인이 아마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이날 류중일 삼성 감독은 김병현 공략을 위해 1번부터 5번까지의 선발 타순을 모두 왼손타자로 배치했다. 김병현이 허용한 안타는 6개. 이 가운데 절반 이상(5개)은 바로 여기서 터졌다. 그러나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허도환은 “왼손타자에 따로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없어 보였다. 몇 차례 맞은 안타는 대부분 텍사스히트였다. 크게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병현 역시 “마운드에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왼손타자에 다들 약하다고 하는데 많이 배치된 타순에 안타를 맞으면 할 말이 없지 않겠나”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의 왼손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274였다. 오른손타자의 0.221보다 0.053이 더 높았다. 이는 피OPS도 마찬가지. 0.833으로 오른손타자의 0.640보다 부진했다.

다수 야구전문가들은 김병현과 같은 언더핸드 유형 투수가 왼손타자를 효과적으로 잡으려면 제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감독의 경기 뒤 평과 같이 이날 김병현은 몇 차례 실투를 범했다. 3회 이승엽과의 두 번째 대결에서는 몸에 맞는 볼을 내주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을 살펴보면 김병현은 날카로운 제구보다 직구의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수에 더 가깝다. 오른손(0.318)과 왼손타자(0.281) 상대 BABIP(홈런을 제외한 인 플레이된 타구의 안타 확률)는 비교적 모두 높다. 반면 9이닝당 평균 삼진(K/9)은 무려 8.6개에 이른다. 특히 구원투수로는 10.5개다. 역대 메이저리그 대표 마무리로 손꼽히는 트레버 호프먼(9.4개), 마리아노 리베라(8.3개), 리 스미스(8.8개), 리치 고시지(7.7개), 롭 넨(10.1개), 존 프랑코(7.0개), 데니스 에커슬리(8.8개) 등을 모두 뛰어넘는 기록이다. 김병현을 앞서는 건 빌리 와그너(11.9개) 정도뿐이다. 선발투수 등판 시 수치는 7.2개로 줄어든다. 구위의 위력이 많은 투구를 소화하며 줄어든 셈이다. 물론 선발과 구원의 투구관리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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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은 이날 경기 초반 구원 등판 때와 같이 전력투구를 펼쳤다. 그는 경기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근 투구 리듬을 조금 바꿨다. 1, 2회는 괜찮았는데 3회부터 조금 힘들었다. 그래서 다시 패턴을 바꿨다. 솔직히 1회 직구 구속으로 147km가 나와서 놀랐다. 굉장히 집중했다. 직구는 자신이 있었고 변화구를 조금 다듬어야 할 것 같다. 볼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진 슬라이더가 긁힐 때는 각이 좋아 배트를 많이 유도했는데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슬쩍 놓으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슬라이더로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도록 더 준비해야겠다.”

몸 상태는 크게 회복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통계전문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김병현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3.4%의 비율로 직구를 던졌다. 그 평균 구속은 141.1km였다. 프로야구 선발 데뷔전에서 직구는 한 번도 140km 밑을 찍지 않았다. 힘이 빠졌다고 밝힌 3회 이후도 그랬다.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병현이 2002년 이후 가장 빠른 평균 구속을 자랑한 건 구원으로만 72경기를 소화한 애리조나에서의 2002년이다. 남긴 수치는 144.4km였다. 선발과 구원으로 각각 12경기와 44경기에 나선 이듬해 애리조나와 보스턴에서는 평균 140.5km를 기록했다. 이는 콜로라도에서 선발로만 27경기에 등판한 2006년의 142.3km보다 낮은 기록이다. 김병현은 플로리다, 콜로라도, 애리조나 등에서 선발로 22경기, 구원으로 6경기를 뛴 2007년에도 142.1km를 남겼다. 릴리버와 선발 등판 시의 직구 평균 구속이 크지 않은 셈이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빠른 공을 꾸준하게 던질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직구 평균 구속이 130km대인 투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무대라면 더욱 그러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병현은 타자를 맞춰 잡는 유형의 투수가 아니다. 거의 매번 정면으로 부딪힌다. 선발로 시즌을 소화할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앞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성공의 관건은 체력”이라며 “이장석 대표의 퍼즐 게임 승패 여부는 김병현과 넥센 코칭스태프가 이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달렸다”라고 예상했다.

(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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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25일 목동 한화전 선발투수로 김병현을 내정했다고 22일 밝혔다. 6일 휴식을 주고 일주일 만에 마운드에 올린다. 구단 관계자는 “김병현은 다른 투수들과 다르다. 당분간 등판 간격이 같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 정민태 투수코치 등이 매일 김병현의 몸 상태를 체크한다”라고 덧붙였다. 중요성을 인식하는 건 김병현도 다르지 않다. 그는 4월 3일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선발을 고집하지 않겠다. 긴 이닝을 못 던질 수도 있다”며 “프로야구에서 라이벌은 나 자신”이라고 밝혔다. 올 시즌이 체력과의 싸움이 될 것을 김병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구원투수가 선발로 변신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김병현은 최근 3년 동안 실전 투구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발 데뷔전에서 그는 충분한 가능성을 알렸다. 높은 평균 구속 등의 특유 이점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미국에서 빛난 ‘핵 잠수함’의 위력은 한국에서 또 한 번 재현될 수 있을까. 김병현이 ‘김병현’답게 관리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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