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과 관료들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고종 자신은 황제의 지위에 오른다. 조선의 자주권을 천명하는 동시에 일본과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 대한제국의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낸 인물이 고종의 일곱째 아들 이은이다.
이은은 고종과 엄비 사이에서 태어나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되자마자 11세의 나이로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끌려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조선 황족도 일본 황족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구실로 이뤄진 유학은 사실상 이은을 '인질'로 붙잡아두려는 일본의 시도였다.
이은은 일본에서 육군 사관학교와 육군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 중위가 된다. 그 사이 조선은 일본에 병합되었고 대한제국은 아프게 요동치다 스러졌다. 대한제국의 역사는 그렇게 끝났다. 이은 역시 황세자에서 왕세제로, 순종 승하 이후에는 허울뿐인 이왕(李王)으로 자신의 의지와 달리 '칭호'를 달리해갔다.
1920년 4월 28일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 기념사진. 이은은 일본 육군 중위의 예복 정장을 입고 이방자는 서양식 대례복을 입었다. 일본식도 조선식도 아닌 서양식 예복을 착용하게 한 것은 조선인들의 반발을 감안한 조치였다.
원본보기 아이콘'평민이 된 왕 이은의 천하'는 이은과 일본 황족 마사코의 결혼으로 시작해 부부가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평민'으로 살아가는 삶을 다루고 있다. 특징은 역사책이 아니라 소설에 가까운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과 일본의 황족이 서양식 예복을 입고 치르는 애매한 결혼식부터 드라마처럼 그려낸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격동기였던 시기인 만큼, 이런 방식은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조망해낸다. 일반적인 짐작과 달리 철저히 일본식 교육을 받고 거기에 순응했던 덕혜옹주 등 여러 극적인 '등장인물'들이 교차되며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키운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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