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가을밤이었다. 어느 낯선 간이역 대합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어떤 서늘한 손 하나가 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섬뜩했으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내가 가진 거라곤 날선 칼 한 자루와 맑은 눈물과 제목 없는 책 따위의 무량한 허기뿐이었으므로.
그리고, 이른 아침 호주머니 속에선 뜻밖에 오천 원권 지폐 한 장이 나왔는데,
그게 여비가 되어 그만 놓칠 뻔한 청춘의 막차를 끊었고, 그게 밑천이 되어 지금껏 잘 먹고 잘 산다.
그때 다녀가셨던 그 어른의 주소를 알 길이 없어......, 그간의 행적을 묶어 소지하듯 태워올린다.

AD

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의 '自序'

[아,저詩]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의 '自序'
AD
원본보기 아이콘

■ 말을 잃고 잠시 두근거린다. 심장을 치고가는 소설 한 편. 모든 시(詩)의 바닥을 데우는 정신의 군불같은 손 하나. 내가 본 서시(序詩) 중에 가장 아름답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