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신채호 서거 76주년 맞아 청원군 귀래리 묘소에서
[아시아경제 왕성상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 서거 76주년을 맞아 조선의열단 후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는 21일 충북 청원군 귀래리 신채호 선생 묘 앞에서 일제강점기 때 무장투쟁론을 조직적으로 실천했던 조선의열단 후손들이 모여 추모제를 올렸다.
추모제엔 ▲신채호 선생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67) ▲조선의열단을 창단하고 노선과 이념을 벗어나 광복군을 만든 김원봉 지사 여동생 김학봉 여사(84) ▲조선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창단해 십자령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윤세주 지사 증손녀 윤영화 여사(83) ▲스님출신으로 의열단을 창립한 김성숙 지사의 외손자 민성진 ▲민중투쟁만이 유일한 독립 신념아래 의열단을 도운 심산 김창숙 지사의 손자 김창(70)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17세 처녀로 조선의용대에 참여한 전월선 여성광복군 아들 김원웅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군악대의 추모음악 연주로 시작된 행사는 단재 선생 약력보고, 기념사, 추모사, 헌화 등으로 이어졌다.
김원웅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은 “조선의용대는 일제관리와 군경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항일조직이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댈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의용대가 무장투쟁노선을 택한 건 3·1운동이 비폭력정신으로 펼쳐졌다는 분석에서다.
김 회장은 또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원칙에 기대를 걸고 일으킨 3·1운동이었지만 미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비호한 것에 대한 실망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가운데 독립은 남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다. 조선의열단의 현실인식은 매우 투철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선의용대는 1942년 중국 팔로군사령부가 일본군에게 포위돼 위기에 놓였을 때 최전방돌격부대로 많은 사상자를 내며 퇴로를 뚫어줘 주은래, 팽덕회, 등소평이 탈출할 수 있도록 해 중국 지도부인사들에겐 생명의 은인이다.
중국의 시인 곽약말은 “조선의용대는 항일투쟁의 가장 용감한 전사”라고 말했을 정도로 중국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항일투쟁조직이기도 하다.
문의는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서울시 청파동 2가 98-4/☎ 02-784-0784, 010-3795-2885)로 하면 된다.
왕성상 기자 wss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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