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인터뷰】'발명'하고 '지속'하는 전방위 한상혁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국내 패션계는 한상혁이라는 이름에 주목하고 있다. 제일모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남성복 엠비오(MVIO)를 훌륭히 주도하고 있고, 어느 날 TV에 패션 멘토로 등장하는가 하면 앱솔루트 보드카와의 콜레보레이션을 내놓는 그의 행보는 어떻게든 두각을 드러낸다.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모든 영역에 전방위 활약 중인 한상혁이라는 브랜드, 그의 작은 사무실에서 커다란 크리에이티브 세계를 가늠해본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제일모직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가지런히 놓인 헬멧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서울패션위크에서 사용한 것들이다. 그는 서울패션위크에서 ‘플라스틱 맨(Plastic Man)’이란 주제로 2012년 S/S 컬렉션을 선보였었다. 이것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형상화한 가상의 캐릭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병원을 연상케 하는 런웨이에는 레드, 블루 등 플라스틱 블록 색상, 의사와 간호사 가운을 입은 모델이 등장했었다.
“서울패션위크도 벌써 열두 번 치렀다. 익숙해졌고, 그래서 더 두렵다. 그 익숙함을 극복하는 게 과제다. 이번 시즌에서 걱정하고 실험했던 게 있는데, 그건 ‘일관성’이란 코드였다.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보여주는 일관성이 있다. 소소한 아이디어에서 발현하는 것들. 상상하길, 갑자기 다른 형식을 취하게 된다면 엇갈리는 반응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일관성에 관한 생각을 했었다. 쇼를 준비하면서 내 크리에이티브의 방향, 힌트 없이 관람객이 어떻게 인지하는지 실험을 해 봤다. 그래서 쇼를 준비하면서 사전에 팁을 주지 않았다. 쇼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내 쇼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면서 과거에 대한 회상, 추억도 좋고 이야기나 난관을 떠올리길 바랐다. 전해져서 관객에게 비처럼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나 봤고 디자인 방향을 보니 내 생각이 대체로 맞았구나 싶기도 했고 그랬다.”
그는 “마지막 인사하는 순간이 디자인을 평가받는 순간이기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고 했다. 열두 번의 서울패션위크, 내셔널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서울패션위크는 축구로 따지면 K 리그다. 좀 더 큰 시장에서 대중적으로,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국내 브랜드가 없다고 본다. 미국의 폴로, 일본의 꼼데가르송 정도에 견주어 얘기하면 그렇다는 거다. 도전이 중요한 시점이라 여기고 있다.”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는 것은 가지 하나를 덧대는 것이 아니라 새 줄기 하나를 보태야 하는 일이다. 그저 새롭기만 해서도 안 되는 전복의 과정. 넓은 스펙트럼을 필요로 하는 그는 국내 패션 시장의 지형, 추이를 어떻게 읽고 있을까.
“사대주의에서 벗어났다. 개인 창작력이 중요해졌고. 양적으로 성장한 시장 안에서 국내 브랜드가 해야 할 부분을 생각해본다. 방향을 갖고 소비자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소비자가 가진 날카로운 시각을 탐색해야 한다. 요즘의 소비자는 그렇다. 유니클로 티셔츠에 질 샌더 코트를 입는 식이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한 거다. 나도 그랬었다. 이건 패션 아이템이 비싸지 않아도 글로벌스탠다드라는 얘기다. 탐스 슈즈를 신는 식이랄까. 소비자를 보는 눈과 글로벌스탠다드, 정보를 공유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서울패션위크는 한참 지났고 앱솔루트 콜레보레이션은 1일 파티로 마무리다. 대한민국패션대전 심사를 맡았는데, 그것 역시 11월 30일로 일단락이다.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엠비오 카탈로그 작업이 즐비해 있다. 바쁜 대외활동 외,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물었다.
“동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또 엠비오와 함께 정기 간행물 작업을 하고 있다. 판매를 떠나 관심이 있었고, 해보고 싶던 일이었다. 6개월 주기로 ‘딜레마 카드’와 ‘캐릭터 빙고 게임’이라는 책자와 같은 작업물을 완성한 상태다. 딜레마 카드는 내가 생각하고 내게 영향을 준 50가지 짧은 문장을 넣은 카드다. 필요할 때마다 한 장씩 뽑아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해결책을 제시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작위로 골라 ‘버리고 싶은 것은 버려도 돼’라는 식의 짧은 지침을 받는 식. 캐릭터 빙고는 내가 영향 받은,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인물들로 구성된 빙고 게임이다. 포함된 인물에는 패션 디자이너 알바 엘바즈, 드리스 반 노튼, 칼 라거펠트, 뮤지션 루 리드 등이 있다. 다음 세 번째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략 ‘애매모호함’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누군가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다면 직장 내에서는 필요한 인재상으로 보지 않겠지. 그러나 또 누군가는 ‘중용’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겠나. 다양한 논점이 충돌하는 ‘애매모호함’을 고민하고 있다.”
그의 근간, 창작의 토양이 되는 이상적인 인물과 태도를 물었다. 그가 말하는 두 인물의 언급은 그의 지속적인 방향이기도 하다.
“뮤즈라고 할 것은 있다. 두 명의 남성상이 있다. 하나는 세르주르 갱스부르그. 그의 영화, 글, 사상, 비주얼로 다가오는 감각적인 스타일이 그 자체로 멋지다. 지성과 교양이 느껴지고 평범하지 않은, 다소 비정상이라 할 행보까지도. 또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마르셀 뒤샹도 나의 근간이다.”
한상혁은 친절하고 팬이 많다. 콜레보레이션을 계기로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앱솔루트 홍보 관계자도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컬렉션을 향한 호감이 대외적 이유, 그를 만난 이들은 그의 친절, 매너에 반한다. 오후 일곱시, 그는 어떤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마음 맞는 친구가 많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정을 나누고 재미있는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다. 사실 직원들의 술자리를 제외하곤 옷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적인 주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디자인, 옷에 관한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작권이란 개념과 오랜 시간 지속성 있는 생필품이랄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째서 옷은 저작권을 가질 수 없을까에 관한 고민이다. 아이폰처럼 개발해서 세계 각지에 집 앞 1km 안에 존재하는 생필품으로선 안 되나.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 적용될 순 없는가 같은. 또 패션 컬렉션이라는 것을 드라마 미니시리즈 제작비만큼 돈을 들여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그 컬렉션을 마돈나나 레이디가가 콘서트처럼 입장 수익을 받아 해보면? 옷을 쇼처럼 즐기고 비디오를 한편 사서 보면 옷에 관해 이해할 수 있는 건 어떨까... 다른 접근 방식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한상혁 디렉터는 엠비오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 시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많은 이들의 멘토다. 그의 아이디어, 결과물이 또 많은 이들의 아이디어샘을 자극한다. 믿음직한 한상혁이라는 브랜드, 그의 더 큰 도전을 기대해볼 때다. 그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도전이 중요해졌다"고.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