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옷과 나체는 안돼-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복장규정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Pun’(펀)은 영어 말장난을 뜻하는 말이다. 비슷한 발음이나 뜻을 가진 낱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자주 쓴다. 문제는 한국말로 고치면 그 맛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10월22~28일)호에서 재미있는 말장난으로 유럽 금융시장 상황을 풀어내 관심을 모았다.
제목은 ‘유럽의 새로운 복장규정’이었다. 얼핏 봐서 의복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금융시장 규제 즉 공매도 금지를 다뤘다.
공매도란 말 그대로 ‘없는 것을 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가격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가 주식이나 채권을 빌려서 매도주문을 내는 것이다. 투자자는 가격이 하락하면 주식이나 채권을 되사서 빌려준 사람이나 기관에게 돌려주고 차익을 챙기는 투자법이다.
그런데 한국말로는 ‘새로운 복장규정’과 ‘공매도 금지’를 연결하는 고리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나 영어로 쓰면 기가 막히게 연결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은 지난 8월 주식 공매도 즉 ‘short’ selling을 금지했다. 보유기간을 ‘짧게 해서’ 팔아치우는 공매도를 금지한 것이다. 프랑스와 와 이탈리아는 오는 11일까지 공매도를 유지하고 벨기에와 스페인은 시한을 두지 않고 계속 금지할 태세다.
유럽연합(EU)은 지난주 한걸음 더 나가 11월부터 국채 크래디트디폴트스왑(CDS)의 ‘Naked Short Selleing(NSS)’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naked’는 한국말로는 ‘알몸’이란 뜻이지만 영어로는 ‘빌린 주식이나 채권이 없다’ 정도의 의미가 된다. 주식의 경우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식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이고,채권의 경우 채권없이 CDS라는 헤징상품을 사는 게 된다.
우리말로 알몸매도라고 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영어로 NSS라는 말을 쓰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웃음과 수긍을 얻을 수 있다.
길이가 짧은 옷을 벗어버렸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고 동시에 빌린 주식이나 채권없이 매도 주문을 내 차익을 챙기는 영민함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코노미스트는 공매도나 NSS를 금지한 것을 두고 새로운 복장규정을 도입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벌거벗거나 짧은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와 공매도를 금지했다는 의미를 동시에 전달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금지조치로 투자자들이 금지된 상품을 투매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 해악을 끼칠 것으로 보면서도 특히 NSS 금지가 투자자들에게 더 손실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스트는 국채가격과 상관관계가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위험헤징을 위해 국채 CDS를 매입하도록 허용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면제조항이 적용되는 상품이 어떤 것일지는 불분명하지만 인프라스트럭쳐 펀드나 회사채 포지션을 단순히 줄여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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