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블로그】'가을에라도' 편지를 써 보죠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최근 재미있는 기사를 봤습니다. 'CNN 인터넷판'에 올라온 것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아이반 캐시라는 인물이 한 달 일정으로 ‘스네일 메일 마이 이메일(Snail Mail My Email, http://snailmailmyemail.org)'이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스네일은 달팽이죠. 달팽이처럼 느린 스네일 메일은 일반 우편을 말합니다.
이 프로젝트 혹은 캠페인이 무엇인가 하면요. 받는 이의 주소를 포함, 100단어 이하의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편지지에 손으로 옮겨 써 부쳐 준다는 겁니다. 편지는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당연히 한국도 오간다죠.
도대체 그들은 누구한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손 편지를 대행해 달라고 하는 걸까요? 재미있게도 90% 가량은 '연애편지'라고 합니다. 연애편지를 대행해준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손 편지를 지향하겠다는 의미일까요?
최근 다소 놀라면서도 재미있었던 일화 하나. 연애사에 문제가 있는 A의 토로를 듣는 자리에서 목하 열애 중이거나 기혼 남녀들이 충고를 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충고가 이랬습니다. "편지를 써." 가급적 '손 편지'라는 주석도 붙었습니다.
다들 그런 충고 중인가요? 궁금했습니다. 모 잡지 L 에디터에게 "손 편지를 애인에게 보낸 적 있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아래와 같은 단문을 보내주었습니다.
"작년 3월이었다. 파리 출장을 다녀오던 비행기에서 누가 봐도 ‘파리에서 산 것 같이 생긴’ 엽서 5장을 꺼냈다. 그러니까 파리와 서울 사이 어딘가의 상공에서 그녀에게 줄 편지를 썼다. 내 마음은 이러하니, 나와 사귀어보지 않을래, 같은 뻔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전 까지 손 글씨 따위는 군대에서 말고는 써본 적 없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파리에 다녀오는 길이니 한 번쯤 이런 멍청한 짓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그녀가 손으로 쓴 편지를 사정없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두 달쯤 지난 뒤였다. 그녀는 지금 내 아내가 됐다."
이걸 읽으니, 아련히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납니다.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그의 부인 도린에게 보낸 편지를 출간한 책이죠. 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쓴 편지들입니다. 만남에서 병상 앞에까지의 이야기들이 적힌 편지들. 결국 그는 2007년 9월에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의 글을 읽고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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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편지글은 위대하네요. "편지를 써"라고 충고할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충고 받기 전에 편지를 쓸 만합니다. 못 다한 이야기, 가을엔 편지를 쓰는 게 아니라 가을에라도 편지를 써 보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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