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지 않는다' -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인터뷰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 34). 2004년, 이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가 첫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많은 이들은 ‘스타 탄생’을 예감했다.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링컨센터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와 실내악단인 세종 솔로이스츠의 수석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실력 있는 신예 비올리스트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전쟁 고아였고, 어릴 적에 앓은 열병으로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형적인 ‘음악 신동’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 ‘반짝 인기’로 끝날 것이라는 추측도 끊이지 않았지만 리처드 용재 오닐은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오가며 여전히 지칠 줄 모르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토록 그에게 환호하고 있는 것일까?
초심을 잃지 않는다 안산과 부산, 전주 투어를 끝내고 오는 8일과 9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기도’ 콘서트를 앞둔 리처드 용재 오닐의 얼굴은 다소 해쓱해 보였다. 9월 내내 앙상블 디토의 앙코르 리사이틀 투어로 이미 전국을 한 바퀴 돈 그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그는 ‘이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해서’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다.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키워준 것은 조부모였다. 음악적 배경도 경제적 여유도 없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음악은 살아가는 의미였고 목표였고 수단이었다. 지역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던 그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음악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이 꿈이 실현된 지금도 그는 무대에 서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잊지 않고 있다.
무대를 향한 열정 과거나 지금이나,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비올라는 낯선 악기다. 열다섯 살 때,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가 신청을 했을 때 이미 바이올린 연주자는 모집이 끝난 상태였지만 비올라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 것이 그와 비올라와의 첫 만남이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처럼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며 강하게 청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악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이올린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그림자를 드리워 음악의 색깔을 바꾼다. 그 어두운 다채로움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그는 비올라를 선택했다. 비올라 독주를 위한 곡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다양한 시도를 해야만 했다. 작년만 해도 엘리엇 카터, 후왕 로우 등 다양한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발표했고 동시에 여러 편곡 작업도 하고 있다. 디지털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연주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그는 획일화된 기술적 완벽함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연주자와 청중이 교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가려 한다. 바이올린에 비해 주목도가 낮은 만큼 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비올라의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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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그리고 균형 그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는 실패에 좌절하기보다는 교훈을 배운다. 뉴욕에서 데뷔한 직후, 바르톡의 음악만으로 독주회를 열었을 때, 처음 연주회장을 가득 메웠던 청중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그 순간 그는 현대음악을 청중과 교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후로는 되도록 보수적으로, 하지만 새로움을 가미해 연주 목록을 정한다. 또래보다 훨씬 더 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그는 무대에 서는 음악가로서 고민도 많고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의 고민은 노력하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인기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는 그는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한 발걸음으로 리처드 용재 오닐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소통하고 공유하는 세상 리처드 용재 오닐은 음악의 힘을 믿는다. 인생이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지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딱히 누구 잘못도 아닌데도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스러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음악을 통해 슬픔과 괴로움을 이겨냈던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비올리스트로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그는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잔잔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다. 그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마음을 치유해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신경이 날카로울 때는 루빈슈타인이 연주한 쇼팽의 녹턴을 듣는다. 감정을 뒤흔드는 음악은 지쳐있는 이에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청중과 공유하고 싶은 것도 이런 치유와 위로의 음악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리처드 용재 오닐. 빛과 그림자, 보수성과 급진성을 겸비한 음악가로서 그의 진화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자.
태상준 기자·이나경(음악칼럼니스트) birdcage@
사진_이준구(ARC)
사진_이준구(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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