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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가 애인과 놀러갔다 발견한 한국의 '구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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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말하는 문화유산 비화(秘話) 다섯 가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문화유산에 숨은 이야기는 인간적인 친숙함을 가져다준다”

약간 그을린 긴 얼굴, 자연스럽게 주름진 회색 재킷. 대한민국 대표 답사가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사진)의 모습이었다. 인상처럼 편안한 입담은 강연장을 연신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딱딱한 연대기나 유물에 대한 작위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문화유산의 비화(秘話)나 솔직담백한 감상평은 청중들에게 한국미술사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 대회의실에서 유홍준 교수의 ‘한국문화의 뿌리’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이 행사는 휴넷이 주최하고 아시아경제신문이 협찬한 골드명사 초청 강연이었다.

그는 슬라이드 쇼를 통해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대표 유물들을 선보이며 그 속에 담긴 미술사적 의미와 시대배경을 전달했다. 특히 유물발견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문화재청장 시절 겪었던 일들을 가미해 흥미를 더했다. 그가 강연에서 이야기한 문화유산 속에 담긴 비화(秘話)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한탄강이 굽이 흐르는 연천 전곡리와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

한탄강이 굽이 흐르는 연천 전곡리와 구석기 유물인 주먹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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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물 최초 발견자 ‘보엔’= 먼저 유 교수는 국사교과서에 첫 이미지로 종종 등장하는 구석기의 주먹도끼를 보여줬다. 1978년 발견된 이 주먹도끼는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유물이다. 이 발견으로 서울대 박물관은 10년간 전곡리 일대를 발굴하면서 4500점의 구석기 유물을 수습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주먹도끼의 최초발견자가 한국 사람이 아닌 ‘보엔’이란 이름의 미군 하사였다는 점. 유 교수는 “인디아나 대학 고고학과에 다니던 보엔은 학비를 벌기위해 한국으로 왔는데 당시 동두천 군부대의 여가수와 연애를 하게 됐다. 그해 1월 전곡리로 여행을 왔고 여친과 커피를 마시려고 코펠에 물을 끓이기 위해 주변에서 주운 돌이 바로 이 주먹도끼였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발견에서 ‘최초발견자’가 최고 대접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 일대를 ‘보엔 유적지’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 가치를 너무 모르고 지나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유 교수는 문화재청장이었던 시절 보엔 하사를 수소문해 찾았고, 주먹도끼 발견 당시 애인이었던 한국인 여성이 그의 아내가 돼 있었다고 술회했다.

빗살무늬 토기

빗살무늬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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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베리아~몽골~제주도~규슈까지 ‘빗살무늬 토기’= 왜 빗살무늬 토기에는 지그재그 사선모양을 새겨뒀을까? 현대인에게는 단순히 멋을 내기위한 추상적인 문양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학계에서는 생선 뼈 문양이 아니었을까 추론한다고 한다. 유 교수는 “혹자는 잡기에 편하려고 또는 빗살문양 그대로 깨지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서 라고도 분석한다”며 “당시 신석기인들에게는 미적인 것보다 실용적인 것이 더 중했을 것이고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우리보다 절박한 게 더 많았을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인간은 촌수가 먼 사람과 결혼해야 후손이 똑똑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게 됐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이는 그 전의 생활문화를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면서 “이를 통해 시베리아, 알타이, 몽골, 제주도, 규슈까지 빗살무늬 토기가 분포해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냥하는 모습. 고구려 5세기, 춤무덤 안칸 오른쪽 벽, 중국 길림성 집안. 오른쪽은 벽화 왼쪽 인물의 확대본

사냥하는 모습. 고구려 5세기, 춤무덤 안칸 오른쪽 벽, 중국 길림성 집안. 오른쪽은 벽화 왼쪽 인물의 확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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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구려 무덤 벽화에 나타난 ‘지난밤 과음한 졸린 눈의 사나이’?= 고구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 사냥하는 사나이들에서 비춰지는 당당한 기백일 것이다. ‘배사법’이라 불리는 말을 타고 달리다 뒤에서 짐승에 활을 겨누는 모습, 호랑이를 잡는 장면이 그려진 무덤 벽화 속에서 장수왕 시절 위용을 날리던 고구려 사나이들의 씩씩함이 전달된다.

유 교수는 중국 길림성 집안에 있는 5세기 고구려 춤무덤 안칸 오른쪽 벽의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이든, 음악, 문학이든 어느 정도 그 분야를 장악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유머’를 넣는 것인데 이 심각한 그림에서도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며 다음 슬라이드를 비췄다.

청중들이 갑자기 '빵 터졌다.' 눈에 들어온 건 숙취에 찌들어 사냥에 나서기 너무 싫다는 표정의 축 쳐진 사나이의 모습. 유 교수는 “이 사람이 타고 있는 말도 마치 브레이크를 밟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바로 여유이자 실력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4. 고구려 고분벽화, 강릉 단오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유산이 ‘보편적 가치를 얼마만큼 담아내고 있는가’라는 점이라고 한다.

유 교수는 중국 집안의 고구려 다섯 무덤 중 4호 벽화를 선보이며 “광물성 안료이기 때문에 항온항습이 잘 된 작품으로 정말 어제 그린 그림과 같다”면서 “이 지역 고분벽화 25개를 중국이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등재했을 때 한국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었다”고 회고했다. 동북공정 등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어 문화재청이 해결책으로 고안한 것은 바로 북한을 설득해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공동 등재하는 것이었다. 결국 2004년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고분 유적유물이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강릉 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중국이 ‘단오’는 자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단오는 보리 추수를 기념하기 위해, 이어 추석은 벼농사 결실을 맞는 행사로 중히 여겨져 왔다. 특히 ‘강릉 단오제’는 1100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역사가 매우 깊은 축제다. 유 교수는 “농사를 먼저 접한 중국이 단오의 오리진(Origin)이라고 한다면 그레고리안 찬트와 같은 기독교 관계 행사는 무조건 이스라엘에서만 벌여야 하는가”라며 “국제적 시각 속에서 펼쳐온 논리로 대응해 지난 2005년 등재가 가능했었다”고 전했다.

5. 울진 금강송에 대한 산림청-문화재청 MOU?= 복원돼야할 건축 문화재 역시 아직도 수없이 많다. 게다가 대부분 목재로 지어야 하는데 절대적으로 재료가 부족한 편이다. 때론 캐나다 등에서 수입해 쓰기도 한다.

유 교수가 문화재청장인 시절 건축문화재 복원을 위해 제안한 것이 바로 산림청과의 양해각서(MOU)였다고 한다. 내용인즉, 울진에 심은 금강송을 150년 뒤 문화재 복원에 사용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산림청장은 이에 화답하고 관련 보호비를 세웠다.

유 교수는 “춘양목이라고도 불리는 이 금강송은 눈이 많은 이곳에서 반듯하게 20미터까지 올라가 목재로는 최고로 친다”고 설명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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