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명성(reputation)은 오랜 세월의 투자와 일관된 활동을 거쳐 만들어지고, 고객의 구매의도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경쟁기업이 모방하기 어렵고 큰 가치를 창출하는, 이른바 핵심 역량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명성은 매우 결정적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업들은 전전긍긍합니다. 기업들은 그동안 언론 보도를 주의 깊게 살피고 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의 명성에 가해지는 위협을 통제하고자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보 유통에 기업이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상시적으로 정보망에 접속해 있는 수많은 소비자들은 정보의 수용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로서 정보를 주고받고 있고, 그 유통 속도 또한 매우 빠릅니다. 어떤 뉴스가 어디서부터 어떤 속도로 퍼져나갈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것입니다.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기업에 이것은 매우 나쁜 환경이지만 기회주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환경입니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한 고객은 자신에게 수천명의 팔로어가 있다는 점을 이용하고 싶은 충동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가 폭발했다고 속여 거액을 요구한 소비자, 규정보다 일찍 단종된 부품을 일부러 주문하면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 이런 사례는 어디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고객은 왕이며, 무조건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기업은 이런 약삭빠른 왕들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지요.
물론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연구의 제안처럼 기업이 악의적인 고객에게 단호하게 대응하려면 "소문은 빨리 퍼지나 진실이 더 오래간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오해로 인해 일정 기간 사업이 타격을 받더라도 말이지요.
박인환 시인은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서 우리가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간다'고 한탄했습니다. 잠시 고립된다 하더라도 원칙을 지켜내는 것. 무성한 뒷담화를 견디고 묵묵히 걷는 것. 결코 만만치 않은 숙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기업에도, 개인에게도.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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