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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에 드리워진 지하경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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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로 불리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3년이 지난 2011년, 유럽 전역에 지하 경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로존 재정적자 위기가 서유럽 경제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 사이 유럽 각국 정부들의 과세·규제 확대를 피해 열악한 저임금노동 현장에서부터 전문직 종사자들에 이르기까지 탈세를 목적으로 한 지하 경제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하경제의 사전적 정의는 공식 경제통계에 실태가 포착되지 않는 음성적 경제활동으로 과세나 규제를 피해 합법적·비합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이루어지는 것을 통칭한다. 사금융시장·마약밀매·도박 등 불법적인 차원에서부터 기업의 음성적 비자금이나 분식회계, 허위소득신고, 과세를 피하기 위한 현금거래도 이에 포함된다.

FT는 ▲밀수나 범죄 등 ‘불법 경제행위’, ▲탈세를 목적으로 한 ‘미신고 경제행위’, ▲자급적 농업이나 가내수공업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경제행위’, ▲법에 규정된 경제활동이나 노동계약 외에 발생하는 ‘일상적 경제활동’의 크게 네 가지로 지하경제를 정의했다.

이같은 지하경제의 확산은 누적된 재정적자 등으로 어려운 유럽 정부들의 무게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적자 해소를 위해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고 과세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세금을 피해 지하경제로 빠져나가고 세입원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의 증가는 지하경제가 더욱 창궐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린츠에 위치한 요하네스 케플러 대학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경제학교수에 따르면 유럽 31개국의 지하경제 규모를 산출한 결과 불가리아가 무려 32.6%에 달해 가장 심각했고 스위스가 8.1%로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중심부 국가들도 10% 이상으로 나타났고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과 그리스는 20% 안팎의 높은 비율을 보였다.

스페인의 경우 지하경제 규모가 공식 GDP의 19.2%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하경제의 성장은 오늘날 스페인 경제의 의문점, 즉 공식적인 실업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에도 분노한 대중들의 시위 등 집단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을 설명해 준다.

정부 공식 통계대로 실업자가 490만명이라면 이는 전체 노동인구의 21%에 이르는 수치로 각지에서 격렬한 시위가 터져나와 스페인 사회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실업률 통계에 허수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상당수의 실업급여 수급대상자들은 사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나름의 생계수단을 갖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지하경제 노동인력과 고용주들이 사회안전망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를 위한 세금 납부 역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당국은 공식 경제지표의 신뢰성 저하를 우려해 함부로 지하경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전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을 더 깎아먹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지하경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탈세행위에 대한 벌금을 크게 늘리는 등 단속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지하경제는 이러한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설·농업 등 산업현장에서의 미등록 고용 외에도 제도권 기업들과 일상적 경제활동의 세금회피 등이 지하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FT는 스페인 주택 소유자의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면서 주택 거래시 과세분을 줄이기 위해 현금거래가 관행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지하경제는 불법이민자나 노동현장에 국한되지 않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종의 탈세 같은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마피아 조직들이 기업 운영에까지 손을 뻗치는 등 심각한 수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국제적 범죄조직들에 의한 ‘돈세탁’ 자금 규모가 GDP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이탈리아 중앙은행에 적발된 불법 거래는 3만7000건에 이른다.

로마 루이스대학의 피에트로 레이칠린 경제학교수는 이탈리아 지하경제 규모가 GDP의 25%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하경제가 형성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금 문제로 높은 세율과 규제에 대한 부담이 국가경제의 그림자를 더욱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의 나라에서는 미약한 법치 수준, 저조한 사회자본,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낮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칠린 교수는 세금 부담을 줄이고, 복잡한 세제를 개혁해 간소화하며,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낮추고, 사법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지하경제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지하경제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수도 없다. 또 지하경제가 반드시 경제에 해로운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어 제도권 경제가 붕괴할 경우 이에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슈나이더 교수는 “지하경제 역시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톱니바퀴”라면서 지하경제가 공적 복지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지하경제가 없다면 스페인은 붕괴했을 것”이라면서 “당장 급하게 돈이 필요하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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