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40분의 침묵으로 가져온 변화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24일 잠실 LG전을 앞둔 두산 더그아웃은 조용했다. 선수, 프런트 모두 말을 아꼈다. 진지한 표정은 덤. 김경문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내내 침묵했다. 겨우 꺼낸 말은 “물 좀 가져다줘”였다.
목은 마를 법 했다. 이날 날씨는 섭씨 28도를 넘었다. 하늘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김 감독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선풍기 좀 틀어줘.” 구단 직원은 의자를 밟고 올라 봉인된 천을 조심스레 벗겼다. 전원을 켜자 삽시간 더그아웃은 먼지로 가득해졌다. 이를 애써 피하려는 기자와 프런트. 그 광경을 지켜보며 김 감독은 처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웃을 수 없었다. 6위로 추락한 팀 성적 때문이 아니다. 악재를 맞았다. 전날 고(故) 송지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투신자살에 마무리 임태훈이 연계됐다. 김 감독은 앞서 그의 거취를 결정했다. 구단 회의를 통해 1군 명단에서 말소시켰다. 두산 구단은 “임태훈이 정신적 충격으로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2군행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소속 선수의 개인적인 일로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야구 방송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당연히 침체된 선수단 분위기. 김 감독은 15분여간 입을 굳게 닫았다. 말문은 안경현 SBS 해설위원의 등장에 겨우 터졌다. “안 좋을 때 오네”라며 농담을 던졌다. 이에 안 해설위원은 “그런 건 아니고요”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이내 그는 자리를 피했다. 바로 전 박종훈 LG 감독과 30여 분간 대화를 나눴던 모습은 재현되지 않았다. LG 더그아웃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캐스터와 이야기를 나눴다.
다시 찾아온 침묵. 취재진 누구도 질문을 꺼내지 않았다. 하늘 위 헬기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김 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난간에 몸을 기대어 10분여간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이내 그는 22일 대구 삼성전 선발 명단지를 토대로 LG전에 나설 선수들의 이름을 작성했다. 펜을 내려놓으며 김 감독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혼잣말을 했다. “날씨는 여름인데, 두산은 왜.”
5분여 뒤 그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시간을 물었다. 더그아웃을 찾은 지 40여분이 지날 무렵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김 감독은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불현 듯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이어진 긴 한숨. 이내 그는 닫혔던 말문을 차근차근 열었다.
“야구를 함께 했던 사람에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유감스럽고 죄송하다.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진다. 이번을 계기로 팀을 추스르고 더 좋게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 먼저 들어가 보겠다. 죄송하다.”
김 감독의 퇴장과 함께 사라진 어색한 침묵. 그제야 선수들도 조금씩 입을 열었다. 한 선수는 “오늘만큼은 질 수 없다. 박현준이고 뭐고 없다”고 했다. 다른 선수는 “미치겠다”면서도 “분위기를 꼭 바꿔놓고 싶다”고 했다. 이를 악문 선수들. 선수단은 어느새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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