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노무현을 많이 사랑했다고만.."
[김해=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세상이 각박해서 그런지 작년보다 추모객이 늘었네요”
지난 21일 김제동의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봉하마을을 빠져나오는 밤 10시에 가까운 시각. 인파에 떠밀려 좀처럼 교통수단을 구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다 우연찮게 합승을 권한 택시 안에서 만난 김둘레(65)씨가 건넨 첫 마디였다.
김씨는 2년 전의 장례식과 지난 1주기에 이어 올해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그가 노 전 대통령을 처음 접한 장소는 부산 부영극장 앞이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을 “매우 집중력이 뛰어나 흐트러짐이 없는 분이었다”고 회고하며 가두시위 행렬을 향해 날아오는 돌들에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했다.
부산 중앙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시위에 나서던 김씨는 ‘참여하는 시민’이었다. 한국통신에서 국제전화 교환업무를 담당했던 김 씨는 1980년 5월 국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쟁 같은 상황이 광주에서 벌어지는데 알고 있느냐고 묻는 전화였다. 광주에 확인 차 걸었던 전화는 모두 불통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틈틈이 길거리로 나서게 됐다. 일본의 플루토늄 수입에 반대하는 그린피스 활동이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기 위한 서명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미 가정을 가진 몸으로 시어머니의 나무람에도 묵묵히 두 자녀를 길러내며 직장생활과 더불어 ‘참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람냄새 나는 세상’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그런 꿈 앞에 노 전 대통령이 걸어가고 있었다. 95년 부산시장 선거 땐 직접 자원봉사자로 나서기도 했던 김씨는 노 전 대통령을 “협상에 능하지만 원칙에서 타협하지 않고, 자그마한 티끌 하나 견디지 못할 강직함을 지녔던 분”으로 평했다. 되려 그런 강직함이 추모객들이 눈물짓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 했다.
김씨는 성장만을 강조하는 요즘 세상이 아쉽다. “뭔가 커진다는 건 그냥 나 홀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것을 가져와야만 커지는 게 세상 이치”인데 법을 만들고 보호해야할 정치가들이 제앞가림하기 바빠 보인다고 나무랐다. 또 지역정서에 취해 언론에서 몇 마디 전해 듣고 좌·우 세몰이에 동참하는 동세대인들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임대 아파트 입구 어귀에 이르러 먼저 택시를 떠나며 김씨는 말했다.
“단지 노무현을 많이 사랑했다고만 해주세요. 그를 기리는 마음만 남겨도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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