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시인 백석의 '산골총각'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산골총각 / 백석 지음 / 오치근 그림 / 산하 / 1만2000원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였던 25살의 시인 백석은 '모던 보이'였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올백에 광택 나는 가죽구두를 신고 다녔다고 제자들은 증언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풍모가 있어, 뒷산 언덕 바람이 아카시아꽃 향기를 실어오면 거기에 취했다. 그는 함흥에서 기생 진향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다. 그는 진향에게 '자야(子夜)'란 이름을 지어주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이별은 없을 것"이라 맹세했다. 그리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썼다.
18년 뒤 46살의 백석은 시를 쓰지 않았다. 자야와는 엇갈리며 헤어졌다. 러시아 문학 몇 개를 번역하고 평론을 한 게 당시 활동의 전부였다. 구전에 따르면 그는 이화여전 출신의 아내가 있었지만 몹시 증오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동화시를 발표한다. "오늘의 동화문학이 동물을 인간처럼 묘사하는 건 동물의 속성을 통해 아동들에게 고귀하고 다양한 윤리의 세계를 보여주며 말해 주려고 함이다"는 말과 함께.
오랜 침묵 끝에 그가 펴낸 동화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처럼 단순했다. <산골총각>은 그런 질박한 이야기다. 고래같은 기와집에, 가난한 사람네 쌀 빼앗고, 힘없는 사람 옷 빼앗아,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뒷산 오소리에 맞서 총각이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기개 높은 총각은 오소리에 차이고, 받히고, 물리면서도 끈질기게 도전해 백년 묵은 오소리를 메어쳐 없앤다.
복도 많이 받았을성 싶다. 그러나 백석이 진짜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건 그 뒷얘기였을 것이다. 산골 총각은 오소리가 모아놓은 재산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가지라 한다. 자기가 모두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쌀 빼앗긴 사람은 쌀 찾아가고, 옷 빼앗긴 사람은 옷 찾아가라고 하면서. 총각의 지혜로, 이 산골 저 산골 평안히 마음 놓고 잘들 살게 됐다는 말로 시인은 동화를 끝맺는다.
백석의 바람은 현실에서도 이뤄졌다. 평생 시인을 그리워한 자야는 남쪽에서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해 거부를 쌓지만 세상에 나눠준다.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그 돈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했다. 그게 지금의 길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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