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비, "괜찮다"지만 시민들은 '불안·초조'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이상미 기자] '생명의 씨앗'이어야 할 봄비가 이른바 '방사능비'로 탈바꿈해 한반도 대지를 공포감으로 적시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로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방사능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7일, 전국 곳곳에선 우산과 우의 등을 구입하려는 손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A마트에선 지난 6일부터 7일 오전까지 우산과 마스크, 우의 등 '방사능비 대비용품'이 평소의 20배 가까운 약 4500점이나 팔려나갔다. 정선희 홈플러스 홍보팀 과장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우리 매장의 우산과 우의 매출이 지난 주보다 240% 신장했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들은 이런 용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수급 파악에 나서고 있다.
불안감은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 더욱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한 카페에 글을 올린 '산호'라는 아이디의 여성은 "초등학생인 자녀가 둘 있는데 밖에 내보내기가 너무 두렵다"면서 "정부가 어떻게 좀 해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모(48ㆍ여)씨는 "중학생인 아이를 일단 학교에 보내긴 했는데 너무 불안해서 긴 점퍼를 입혔다"며 공포심을 감추지 못했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의식한 듯 교육 당국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6일 경기도 소재 일선 초ㆍ중ㆍ고등학교에 '학교장 재량휴교'를 권고하는 긴급공문을 보냈다. 7일 오전 10시 현재 여주 송촌초교, 안산 경수초교, 화성오산 배양초교 등 3개교가 휴교 조치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서울시교육청도 이날 아침 일선 학교에 '옥외 활동을 자제시키라'는 내용이 담긴 긴급공문을 내려 보냈다.
서울시교육청은 '방사성 물질이 비에 섞여도 극미량이라 무해하다'며 휴교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시교육청 웹사이트와 사무실에는 전날부터 학교를 쉬게 해달라는 내용의 글과 전화가 잇따랐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현재 측정된 방사성물질 수치가 인체에는 유해하지 않다는 게 과학적 판단이지만 휴교나 예방조치에 관한 문제는 각 시도교육감들의 재량"이라고 말했다.
방사능비를 피해 아이를 승용차로 등교시키는 경우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날 오전 8시께 울산 남구 강남중학교 앞에는 자녀를 태우고 온 학부모들의 차량이 줄을 잇는 모습이 연출됐다. 서울 노원구 계상초등학교 교문 앞에선 학부모 봉사단과 교사들이 학생들의 우의 착용 및 우산 지참 상태를 직접 챙기기도 했다.
불안한 건 학생과 학부모 뿐만이 아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비가 오면 전의경들의 외부 활동을 자제시키라'고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고, 환경부는 전국 지자체와 수도사업자들에게 노천 정수시설을 빗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덮개 등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연일 불안감을 자제시키는 정보를 발표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 분위기다. 오락가락하는 정보 제공이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기상청은 줄곧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성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될 가능성은 적다"고 발표한 데 반해, 일본 정부는 "방사성물질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한반도에 상륙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매우 작고 극단적인 확률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 수치가 얼마건 간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이어 "50%가 51%로 늘어나는 것보다 0%가 1%로 늘어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얘기"라면서 "정부가 보다 명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통해 불필요한 불안감을 없애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방사성 비에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불안 심리를 다독이는 적극적인 정보제공으로 정부가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한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이날 오전 3시까지 채취한 전국의 빗물을 분석한 결과, 제주에서 방사성물질인 요오드(I-131)와 세슘(I-137 및 I-134)이 각각2.02ㆍ0.538ㆍ0.333㏃/ℓ 농도로 검출됐으며 이는 인체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니지만 지난 4일보다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밝혔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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