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중 "장항준 감독님, 저 좀 서운했어요"(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아무렇게나 삐친 헤어스타일에 야상점퍼,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던 고다경은 온 데 간 데 없고, 상큼한 오렌지색 원피스를 입고 긴머리를 얌전히도 늘어뜨린 S라인 그녀가 새초롬히 앉아 있다.
마치 한차례 뜨거운 열병을 앓고 난 뒤 방금 훌훌 털어내고 일어난 듯한 얼굴이다. 배우 김아중에게 SBS 수목드라마 '싸인'은 그런 느낌이다. 많이 사랑했고 많이 앓았고 기분좋게 떠나 보냈다.
실제로 그는 드라마를 마치고 쓰러지 듯 잠에 빠진 뒤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병원 갈 힘도 없을 만큼 기력이 쇠해져 소속사도 깜짝 놀랐는데, 의사 진단 결과 "당이 좀 떨어진 정도"란다. '너무 건강한 거 아니냐. 그 정도 고생했으면 한 사흘간 병실에 누워 링거 맞고 그래야 여배우 아니냐'고 짓궂게 묻자 "포도당 좀 맞으니 벌떡 일어나더라"며 깔깔 웃는다. 지난 석달간 고다경에 빙의했던 김아중이 돌아왔다.
"드라마 시작 전에 제가 이루고 싶었던 걸 이뤘어요. 그동안 로맨스물만 보여드린 거 같아서 완전히 다른 장르에도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시놉시스를 보고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다만 걱정은, 나는 재미있는데 사람들이 과연 좋아해줄까 하는 거였죠. 사실 제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거든요. 다행히 에피소드가 빠르게 전개되고 각 에피소드마다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나오면서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가 쉽고 흥미롭게 받아들여진 것같아요."
'싸인' 20회에서 드러난 멘토의 죽음. 공교롭게도 김아중 그 자신은 실제로도 멘토의 죽음을 맞닥뜨렸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해 12월 일이었다.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김아중에게 공부의 재미와 깊이를 느끼게 해주며 감정커뮤니케이션을 함께 집필했던 故 김광수 교수다. 김아중은 올 초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자신의 트위터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멋있는 천재이자 나의 멘토! 김광수 교수님"이라는 표현으로 무한한 애정과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지내는 일상이 그리워져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그래야 좀 더 보편적인 삶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게 만난 김광수 교수님은 정말 제가 철철 눈물을 흘릴 만큼 저의 진정한 멘토가 돼주셨죠. '싸인' 대본을 받자마자 교수님께 '정말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이 들어왔다'고 말씀드렸었거든요. 근데 암 투병을 하시다 눈을 감으셨어요. 밤새 '싸인' 촬영하고 조용히 장례식에 갔죠. 교수님과 몇가지 약속을 했어요. 그 중 하나는 정말 공부하려면 끝까지 해야한다는 거였는데, 그래서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박사과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 '미녀는 괴로워',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를 통해 예쁘고 날씬하거나, 청순하고 로맨틱한 매력만을 보여줬던 김아중은 이번 '싸인'을 통해 다시 껍질 하나를 깨고 나온 느낌이다. 그 자신 역시 "사람들이 '앗, 김아중이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나?' 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나를 향해 열린 시선을 갖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의 희망은 그대로 현실화됐다. 시청자들은 '예쁜 모습' 포기한 채 화장도 거의 안하고 일명 '거지컷' 헤어스타일을 아무렇게나 묶고 뛰어다니는 김아중에 놀라고, 또 감탄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캐스팅한 장항준 감독(10회부터는 작가)에게 묘한 서운함을 안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처음에 장항준 감독님이 저를 좀 의심하셨어요. 정작 캐스팅하려고 제게 대본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얘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놓치지 않으셨죠. (그게 느껴져요?) 그럼요! 느껴지죠. 배우는 연출자의 믿음으로 연기하는 사람인데,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계시는구나. 사실, 서운했죠. (이젠 그런 의심의 시선 없어졌겠네요) 사실 없어졌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10회 이후엔 현장에서 뵌 적이 없어서.(웃음) 쫑파티 때 여쭤봤어야 하는데 제가 아파서 못갔네요. 지금이라도 여쭤보고 싶어요. 제 연기, 어째 좀 흡족하셨는지. 하하하."
스포츠투데이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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