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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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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의 발병원인이 개인적으로 손을 잘 씻지 않는 습관과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 도심 지하철 역사를 거점으로 한 노숙자 집단은 여전히 청결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전통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허기를 면하지만 신종플루 발병환자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테러균의 확산을 계기로 단기간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회사들이 많습니다. 타미플루를 비롯한 독감백신을 생산하는 제약사는 물론 세정제와 마스크 생산업자들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지요.

전 지구적인 재앙과 두려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 리가 없습니다. 상영 1주일로 접어든 블록버스터 외화 ‘2012’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인디펜던스데이’와 ‘투모로우’란 재난영화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란 거장의 신작입니다.

고대 마야인들의 달력에서 경고됐다는 지구 종말의 날인 2012년 12월21일에 포커스를 맞춰 감독은 대폭발과 지진·해일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를 와이드 스크린에 고스란히 사실적으로 담았습니다.
그날, 태양 중심부의 폭발로 시작된 미묘한 우주질서의 변화가 잠잠했던 지구의 속을 왈칵 뒤집어 놓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시작된 화산폭발이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원시상태로 파괴하고, 지축이 흔들리며 갈라진 천길 낭떠러지로 인류의 문명들이 송두리째 빨려 들어갑니다.

일단 과학자들에 의해 예고된 재앙이기에 8개 강대국 수뇌들이 극비리에 공조하여 비밀프로젝트가 수행되죠. 시뮬레이션 결과, 지진과 화산폭발에 이은 대해일이 시작되면 해발 1500m 이하의 구조물은 모조리 잠긴다고 하니 21세기형 철갑 노아의 방주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으로 남게 됩니다.

티베트 고원 깊은 협곡 속에서 은밀하게 몇 대의 방주가 제작되고 사전에 선택된 자들에게만 티켓이 발매되지요. 공포와 혼돈을 우려하여 비밀을 누설한 자들은 어김없이 살해되었고 마침내 해수면 아래로 잠기는 에베레스트를 눈앞에 보며 서서히 방주가 뜨기 시작합니다.

그 방주에 승선을 거부한 미국 대통령이 피난은커녕 백악관에 앉아서 국민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하는 작위적인 설정이 믿기지 않지만, 해일에 뒤집힌 채 떠밀려온 항공모함 한 척이 백악관을 덮치면서 워싱턴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스케일에 관객은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습니다.

두려워 해야 할 지구대폭발과 해일을 찍은 화면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도리어 그 비장감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맙니다. 문득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 중에서 한 구절,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란 가사가 떠오르고, 와중에 영화 ‘해운대’를 제작한 우리의 용감한 젊은이들에게 연민의 감정까지 들더군요.

보이는 모든 현실이 사라지는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야비한 인간 군상들의 면면이 있는가 하면 새 시대를 건설하면서 어린 생명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는 휴머니즘도 깔려 있습니다.

2012년 12월21일 이후에는 달력의 날짜 자체가 없다는데···. 제가 선관위에 확인해보니 대한민국은 그해 12월19일 해가 뜨면 예정대로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5년을 준비할 계획에 전혀 차질이 없다고 합니다.
수정이 되든 말든 말 많은 세종시 건설도 그대로 계속되겠죠.

그런 상상을 해보면 한편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조국이기도 하네요. 제주도에선 올 겨울도 잊지 않고 동백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지금의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도 아주 먼 시절에 터졌던 지구의 종양이 야물게 아문 상처임을 결코 잊지 맙시다.

2시간 반 동안 한눈을 팔 수 없이 계속되는 아비규환과 대혼란 속에서도 여운이 남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대지의 형제들이다.”
“들리는 모든 말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살고 싶다면 예매하라!’ 이런 발칙한 광고카피가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걸 어찌 필설로 다 하겠습니까. 장엄한 히말라야산맥 만년설이 파도에 휩쓸리고, 아프리카 대륙이 수천m 융기하며 남아공의 희망봉이 지구의 최고봉으로 등극하는 순간에···.

시사평론가 김대우 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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