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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서남표 KAIST 총장, 뚝심과 추진력 넘치는 '70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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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취직보다 창의적 사업으로 남에게 직업을 주겠다는 생각을 하라"

대담=김동원 부국장 겸 정보과학부장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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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미국에서 무려 3개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며 어렵사리 MIT를 다니던 한 청년은 어느날 단아한 모습의 한국인 여학생을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당시 고학을 하던 청년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자 마음을 태운다.

어느날 이 청년은 한달치 아르바이트 월급을 몽땅 털어 택시를 타고 무작정 수십㎞ 떨어진 그녀의 집을 찾는다. 이국땅에서 택시를 이용한 희한한 데이트가 몇차례 더 이어졌고, 택시비가 한 달치 아르바이트 비용임을 알게 된 여학생은 결국 동갑나기 청년의 정성에 감동하게 된다. 이 청년은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을 통째로 움켜쥔 채 평생의 동반자가 된다.
요즘 한국 대학교육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서남표 KAIST 총장(73)의 청년 시절 일화다. 서 총장은 20대 청년기에도 일단 목표를 정해놓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실행'에 옮기는 막강한 추진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 29일 웨스틴 조선호텔 비즈니스룸에서 만난 서 총장은 강인함과 여유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내공이 느껴지는 노신사였다. 서 총장은 학교관련 예산을 따내거나 각종 회의나 행사에 에 참석해 KAIST를 홍보하기 위해 대전과 서울 등지를 자주 오간다고 한다.

서 총장은 70대라고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서 총장은 이날도 새벽 4시에 일어나 경제관련 논문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 과학기술 외에 경제로 관심분야를 넓혀 새롭게 경제문제를 바라보고 재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가 이뤄진 이 호텔은 서총장의 'KAIST 서울 출장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서남표의 힘

서 총장은 요즘 KAIST라는 새로운 '연인'을 상대로 50년 전과 똑같은 대시와 시도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의 몸짓마다 자신감이 느껴지고, 평생의 배필을 구할 때와 같은 정성이 감지된다. 서 총장이 KAIST에 거는 목표는 분명하다.

바로 '세계 최고 이공계 대학'으로 우뚝 서는 일이다. 서 총장은 이같은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학생들과 한국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확신이 설 때마다 이를 웅변하고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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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표 총장의 추진력과 뚝심은 늘 그를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서 전임 KAIST 총장을 맡았던 로버트 러플린 박사에 이어 서 총장이 카이스트 총장에 올랐을 때 그가 '개혁총장'으로 이 처럼 괄목할만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서 총장은 러플린 전임 총장이 못다 이룬 KAIST호의 개혁을 취임 3년여만에 반석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총장이 많은 성과를 일궈내면서 성공적 삶을 살아온 첫 걸음은 바로 '목적'에 대한 물음이었다. 명확한 목표 설정과 '투자', 그리고 엄청난 열정과 추진력이야말로 서 총장의 특유의 힘이라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서총장은 얼핏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실제로는 호탕한 웃음이 돋보이는 매력남이었다.

◆책임감 있는 과학인재 육성

서 총장이 이끌고 있는 카이스트는 지난 3년동안 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교수들의 정년 보장제는 옛말이 됐고, 수업료 전액 면제의 혜택 을 받던 학생들도 성적에 따라 돈을 내야 했다. 초기에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 총장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수많은 반발 속에서도 카이스트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다.

서 총장은 "젊은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카이스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많은 혜택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학생들의 책임은 공부를 하는 것이고, 교수들의 책임은 연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원칙론도 그는 여러 번 강조했다.

카이스트는 최근 학내에서 새벽 2시부터 7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역시 '책임을 지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서 총장은 "게임하고 노는 것도 좋고 그것을 통해 창의적인 성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해 본래의 책임을 소홀히 한다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는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리라는 것이 서 총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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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총장은 "한 예로 겨울방학을 한달로 줄이는 대신 여름방학을 3개월로 늘려 그 기간에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지난해에는 600개의 인턴 자리를 학교에서 준비했지만 올해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서 총장은 이어 "결국 제도를 마련하고 개혁을 단행하는 것은 스스로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학생들의 독립심을 키워 책임감 있는 과학 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며 "머리 좋은 사람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노력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한다', ' 남에게 기대지 않는다'는 자세로 지식에 접근하면 열심히 할수록 성과가 쌓인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 발전 위한 기부문화의 정착

서 총장이 '책임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또 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받는 혜택은 정부지원뿐 아니라 독지가들의 기부금에서도 상당 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카이스트에 들어온 기부금은 지난해 무려 1200억원에 달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동과 학생들을 위한 병원 등 14개의 건물이 요즘 들어섰거나 공사중이다. 서 총장은 "융합연구를 시작해야 하는데 건물이 없어 연구가 진행이 안되는 상황이었다"며 "기부금 덕에 일련의 사업을 별 문제없이 진행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서 총장이 석좌교수로 재직한 MIT공대는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하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서 총장은 "한국사람들은 기부를 잘 안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지인과 개인적 인맥을 통해 기부를 받기 시작했다"며 "기부금이 모이기 시작하자 국내에서도 자연스럽게 기부가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 총장은 특히 카이스트에 기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젊었을 때 고생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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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총장은 "독지가들의 기부금은 그들의 노력과 땀이 절절이 배어있어 정말로 귀한 돈"이라며 "과학발전을 위한 기부금은 학생과 학교를 위해 쓰이므로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KAIST 학생들의 수준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면서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 보다 훨씬 더 우수할 뿐 아니라 꾸준히 노력을 이어가면 세계 1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과학기술은 재미있다"

서 총장은 그 흔한 골프도 즐기지 않는다. 여가시간도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주로 일하는 데 쓰고 있다. 잠도 많이 자지 않는 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서 총장의 답이다. 과학자로서 매일 새로운 성과에 도전하는 작업도 재미있고, 카이스트 총장으로서 업무가 마음에 들고 재미있다고 한다.

서 총장은 "과학기술이라고 해서 실험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며 "큰 회사에 취직해 안정성을 노리는 사람 보다 창의적인 사업으로 다른 이들에게 직업을 주겠다는 생각이 더욱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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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대중화에 대해서도 서 총장은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는 과학기술이라고 하면 밥먹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서 총장은 일선 교육 현장에서 과학기술을 재미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융합과 소통이 해답

서 총장은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뜨고 있는' 융합연구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과학분야간 소통과 융합이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 원인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를 들려주기도 했다. 서 총장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빠르고 점차 세분화 되는 바람에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도 서로의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박사나 교수라고 하면 그 분야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혼자 연구할 수 있다는 자격증일뿐이며, 박사를 무조건 받드는 문화가 결과적으로 학문간 소통을 막은 것 같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서 총장은 "남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과정에서 학문간 소통과 융합이 가능한데 한국 과학자들은 그 부족함을 내보이는 데 인색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카이스트는 학문간 융합과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을까. 서 총장은 처음에는 서로의 학문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고 밝혔다. 서 총장은 " 하지만 현재는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며 "학문을 하려면 서로 얘기를 해야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과 기계학을 연구하는 학자간에는 서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이스트는 학문간 소통 정책의 일환으로 폐쇄적 실험실 문화를 혁신했다. 서 총장은 "실험실에 자기 학생들만 들어오게 하는 것은 문제"라며 "카이스트는 실험실을 공동으로 쓰며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서 총장은 이어 과학기술계를 위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은 자기 시야의 한계가 인류의 한계, 자연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서 총장은 "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세계를 평가하려고 하면 발전하기 힘들다"며 "특히 과학기술자는 늘 한계가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의 한계를 인류의 한계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서 총장은 "과학기술은 해당 분야의 성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더욱 발전돼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학문은 넓게 볼 수 있어야하고 공부도 계속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서 총장은 2시간에 가까운 인터뷰에도 시종일관 꼿꼿한 태도로 KAIST가 한국 과학기술의 산실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일관되게 피력했다.

정리=김철현 기자 kch@
사진=이기범 기자 metr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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