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새 색시 옥새 옷고름을 던져 놓은 것 같은 섬진강<2>
강이 아프면 사람들도 아팠고 목말라 하면 사람들도 목이 탔다
섬진강만큼 사람들을 가까이 거느리고 사는 강은 없다. 강이 그리 크지 않고 산과 산 사이 좁은 계곡을 지나니 거기 있는 땅 또한 넓지 않아 작은 마을들이 생겼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산과 강을 가까이 했다. 거기 그들을 살리는 양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 이쪽과 저 쪽을 왕래하기 위해 사람들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징검다리를 놓았고 물이 더 깊으면 나루를 만들어 배를 띄웠다. 섬진강은 아무리 강폭이 넓어도 강 이쪽에서 강 저쪽의 사람을 부를 수 있었다. 강 이쪽과 저쪽 강변에다가는 소를 놓아길렀고 물이 불어도 물이 닿지 않은 곳에 논과 밭을 일구었다. 산자락에 만든 논과 밭에 봄이 와 풀들이 돋아나면 사람들이 작은 들로 나가 풀을 뜯고 자운영 꽃 핀 논을 갈아엎어 곡식을 가꾸었고 산에 들어 나물을 뜯어 고픈 배를 채웠다. 이와 같은 자연과 인간의 공생은 산과 강 모두 사람들의 생명 그 자체였으니 산과 강이 사람들과 한 몸이었다. 강이 아프면 사람들도 아팠고 산이 가물어 산이 목말라 하면 사람들도 목이 탔다.
$pos="C";$title="";$txt="섬진강 상류 한 마을주민들과 막걸리 마시며 담소나누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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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강물로 달려들고 산을 오르던 산과 강은 거기 그대로 있으되 이제 강과 산은 옛날의 그 맑고 고운 산이 아니다. 산에서 일하다 목말라 달려와 엎드려 마시던 꿀같이 달던 강물은 흐려져 발 담그기가 두렵고 산자락에 있던 논과 밭은 나무들이 칙칙하게 우거져 사람들의 발길을 막는다. 사람들과 한 몸이던 강물과 산이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이 강을 죽이고 고기들을 강에서 쫓아내고 있다.
강물의 생명인 강에 사는 것들이 강에서 쫓겨나니 사람들 또한 강물에서 쫓겨날 것이다. 자기 몸 어디가 조금만 이상해도 호들갑을 떨며 병원을 간다, 보약을 먹는다, 야단이면서 말 없는 산 말 없는 물의 고통을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
푸른 하늘 맑은 산과 물 거기 사는 사람들의 고운 심성들은 한가지였다. 어렵고 복잡한 이론도 논리도 거기엔 없었다. 오직 단 한 가지 하늘, 산, 물, 바람, 땅, 새와 여러 짐승들의 속내가 사람과 서로 지극히 닮았을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앞 강물에 세수를 하려고 강물에 엎드렸을 때 내 얼굴이 흐려 보였다. 거울이, 인간의 거울이 더러워진 것이다. 얼마나 그 얼마나 오랜 세월 산이 거기 있었고 강이 거기 있었던가. 사람들이 거기 또 그렇게 산과 강과 함께 있었던가.
섬진강의 사계
- 꽃
눈이 온다.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풀잎과 풀 잎 사이, 집과 집 사이, 눈이 산을 그리고, 들을 그리고, 마을을 그리고, 산길 들길을 하얗게 그리며 눈이, 눈이 온다. 세상을 그리며 오는 눈송이들은 눈을 환하게 뜨고 강물로 무심히 사라진다. 눈이 온다. 산과 들은 희고 강은 큰 붓 자국처럼 검고 힘차다.
꽃이 핀다. 산에 강에 언덕에 꽃이 핀다. 이 세상을 환하게 열어 제치며 꽃은 핀다. 강바람이 불고 꽃이 진다. 산을 날아 온 꽃잎들을 강물이 싣고 간다. 세월처럼, 사랑처럼, 기쁨처럼, 슬픔처럼 강물은 꽃잎들을 싣고 흐른다.
오! 산아! 저문 산들이 마을을 데리고 강으로 내려와 얼굴을 씻고 일어선다. 달이나 뜨거라! 검은 산을 넘어 온 달이 강물 속에 눈부시게 부서진다. 강기슭을 허무는 달빛아! 소쩍새가 검푸른 산을 운다.
구절초가 피누나. 강가에 고마리 꽃이 피누나. 억세야! 산아래 섬진강 강 언덕에 피는 희고 고운 내 님 손짓일레라. 나는 못 간다. 저 가을 섬진강 작은 마을 동구 단풍 물 드는 느티나무 두고 나는 못 갈레라. 나는 못 갈레라. 내 핏속을 따라 흐르는 저 고운 강 두고 나는 못 갈레라.
강물이 흐르는 산 아래 작은 마을, 가난이 아름다웠던 작은 마을, 내 숨결이 살아 난 작은 마을에 나는 세상과 숨을 쉬며 살았다네. 나는 산다네.
그 강 언덕에 집
-우리 집
그 집은 동네의 가운데쯤에 있다. 나지막한 뒷산에는 밤나무가 있고 솔숲이 있다. 그 집 앞에는 고추밭, 무 밭 그리고 고추 밭에 강냉이 잎이 여름과 가을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달이 뜬 여름밤 강냉이 잎에 바람이 불면 넓적한 강냉이 잎에 떨어진 달빛이 은가루처럼 잎을 흘러내린다. 집 앞 고추밭 지나면 큰 길이 있고, 그 아래 강변, 다음에 강이다. 강 언덕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그 집 마루에 앉거나 눕거나 서거나 간에 강물이 보인다. 그 마루에서는 안 보이는 게 없다. 산도 물도 강물로 떨어지는 눈송이도, 강물로 날려 오는 앞산 꽃잎이나 단풍 물 든 낙엽들도 다 보인다.
$pos="C";$title="";$txt="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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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는 꽃들이 피고 눈들이 쌓이고 아이들이 논다. 그 집에는 방이 셋, 부엌, 키 작은 내가 세로로 누우면 내 키하고 딱 맞은 마루와 엉덩이 폭 만 한 툇마루가 있다. 툇마루에는 일터에서 돌아오신 아버님께서 잠깐 땀을 식히시며 앉아 앞산의 단풍과 꽃과 강물을 바라보시던 곳이다. 그 집 어느 방에서 문을 열어도 앞산과 강물의 세월이 보인다. 부엌문을 열고 어머님이 허드렛물을 버리시며, 앞산의 단풍과 봄과 눈 오는 것을 알리시곤 하셨다. “하따나, 저 새 잎 피는 것 좀 봐라 꽃보다 더 이쁘다인.” 하시거나 “하이고, 눈도 곱게도 오신다.” 하시곤 하셨다.
어쩔 땐 소쩍새까지 울어대면 참으로 혼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면 나는 얼른 방문을 열고 꽃보다 고운 앞산의 새잎이나 강물로 사라지는 꽃잎 같은 눈송이들을 보다가 문울 닫곤 했다. 그 집 방중에 한 칸은 내 방이었다. 내 방엔 창호지 문이 여섯 짝이나 있다. 추석이나 설에 새로 문을 바르고 누워 있으면 참으로 방이 환했다. 나는 그 방에서 평생을 보냈다. 나의 어떤 시 구절처럼 나는 그 방에서 “기뻤고 슬펐고 사랑의 외로움에 두 어깨를 들먹였다” 세월이 가며 그 방에는 책들이 쌓여가고 내 생각이 자라나 밖으로 나갔다. 달이 뜬 밤에는 불을 끄고 창호지 문으로 들어온 달빛에 괴로워했고 잠 못 들어 했고 그리워했고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원했다. 달빛에 견디지 못하면 툇마루에 나가 앉아 달을 보거나 강변에 나가 헤매거나 징검다리를 건너며 징검다리 물소리를 들었다. 어쩔 땐 소쩍새까지 울어대면 참으로 혼자 견디기 힘들었다.
숱한 밤을 그렇게 나는 그 방에서 지냈다. 달빛으로 시를 쓰고 겨울 밤 앞산 뒷산 밤바람 소리로 나는 자랐다. 내 방에서도 문을 열면 아침 강물이 보였고 봄과 여름 햇빛과 가을바람과 겨울 흰 눈 내리는 것들이 다 보였다. 그 좁은 방은 알이었다. 내가 세상의 햇살을 눈부시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까지 그 방은 내게 두꺼운 껍질로 둘러싸여있는 알이었다. 나는 어느 날 그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내가 세상에 나가자 사람들이 그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 집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겼으므로 많은 사람들도 그 집을 모두 좋아하고 아꼈다. 동생들이 다 커서 객지로 가고 아버님은 그 집 아버님의 방에서 돌아가셨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사셨던 그 방, 내가 어쩌다 새벽까지 자지 않고 책을 보고 있으면 새벽에 깨신 아버지 어머니는 도란도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로 날을 밝히시곤 하셨다. 자식 걱정 강 건너 밭에 곡식 걱정 때론 웃으시고 어쩔 땐 근심어린 목소리가 내방을 찾아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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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 그 집에 한 여자가 찾아 왔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딱 일 년이 되던 날이었다. 그 여자는 그 집에서 살기로 작정을 했는지 얼마 안 있어서 그 집으로 자기의 인생을 옮겼다. 그녀는 그 집 가난한 방과 부엌에서 살았다. 부엌에서는 불을 때서 밥을 했다. 부엌에 연기가 캄캄하게 날 때면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와 바람을 쏘였다. 날이 가물면 나는 강가에 있는 샘에서 물을 길어 왔다. 퇴근 길 아내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으면 나는 얼른 달려가 빨아 놓은 빨래를 내 머리에 이고 돌아와 빨래 줄에 널었다.
그 여자는 내 아내가 되어갔고 촌사람이 되어갔다. 촌사람이 되어가면서 아내는 그가 살아온 그 어떤 것들을 버리고 튼튼한 그 어떤 것들을 새로 터득하고 몸에 익히며 배워갔다. 아내는 점점 건강한 생활을 하며 동네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갔다. 그녀 특유의 침착함과 낙천성은 더욱 더 힘을 얻어갔다. 아내는 동네 나이 든 할머니들의 며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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