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경제당국이 아직도 헛방 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겁을 내야할 때는 길길이 날뛰며 겁도 없이 덤비더니 당차게 덤벼야 할 때는 정작 겁을 내고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돈이 왔다가도 굴러나간다"

NYSE(뉴욕증권거래소) 플로어 트레이더 몇몇이 최근 주고 받았다는 탄식이다.

매도를 하건 매수를 하건 양방향에서 수익만 내면 그만인 그들이지만, 요즘 거래 돌아가는 꼴이 참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긍정적인 이슈가 나왔으면 제대로 흥겹게 밀어주고, 아닐때도 참을 줄 알아야 불황 속에서도 시장을 죽이지 않고 살려내는 길인데 요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버냉키 의장이 "은행 국유화는 필요없다. 민간 자율에 맡기겠다"고 말했고, 오바마 대통령이 "총력을 기울인다"고 말했으면 바닥은 지켜보겠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버냉키의장이 "부실채권 매입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시장에 확신을 심어주는 부분이다.

종전까지 시장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던 것이 부실채권 매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시장이 불안해 했기 때문인 것을 감안하면, 최근 버냉키의장의 언급은 일단 시장 투심을 돌리기에 충분하다.

스트레스테스트 등의 쇼를 거쳐 부실채권 매입 구체안만 밝혀주면 될 일이다.

최근 FOMC 의사록 공개에서 전기에 '디플레이션 공포'를 지적했던 것을 갈아엎고 '인플레이션 우려'를 지적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당연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FOMC 의사록이 그들의 스탠스를 반영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들이 현재 '돈줄 풀 때를 재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테스트 후에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주겠다는 것은 최근 내놓은 방안 중에 가장 구체적이다.

구제금융자금 수백만달러를 푼다고 연일 외쳐봐야 그 사용처가 불분명했고, 돈을 줘봐야 지급준비금 쌓아두기에 바빠 실효성이 없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이는 경기침체를 이겨내기 위해 반드시 건쳐야할 단계다.

어제 미국 증시 장후반 하락을 놓고 시장에서 여러가지 얘기를 늘어놓지만 어디까지나 설(說)은 설(說)일 뿐이다.

금융을 비롯한 기타 산업에서도 '살릴 것은 살리고 버릴 것은 버리는'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돼야 경기회복에도 속도가 붙는다.

이미 채권시장, 외환시장, 상품시장에서 이를 인지했으나, 증시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들이 계속 의심을 품고 있으면 시장은 또 다시 반등 동력을 잃게 된다.

이미 놀랄만큼 놀라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것도 당연지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본시장에서 살아남겠다고 작심했다면, 일단 시장을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모 외국계 증권사 상무가 '시장은 투표를 하고 있다'라고 했다.

내가 시장 참여자라면 나 또한 시장에 한표를 던져야 한다.

시장을 죽이는 쪽에 던지든 살리는 쪽에 던지는 그건 자기 판단이라지만, 살자고 던지는 표가 늘어나는 판국에 죽으라고 표를 던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대공황의 시기를 '신뢰'를 기반으로 이겨낸 것처럼, 현재의 경제침체를 이겨내는 데도 '신뢰'가 우선이다.

가깝게는 RBS를 포함한 유럽계 은행의 실적 공개, GM을 비롯한 빅3 부도처리부터 시작해 조금 멀게는 모기지 시장 구제까지, 아직도 시장이 함께 넘어야할 산이 많다.

산을 넘기 위해선 채찍도 필요하지만 때때로 당근도 필요한 법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은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금주에 이어지고 있는 미 당국의 뱅킹시스템 정상화를 위한 발언, 영국 정부의 RBS 및 로이드 채권 보증은 부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줄 일이다.

김경진 기자 kj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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