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안보·경제·한일관계' 삼중 시험대
일본유신회와의 불안한 동거
트럼프 방일·APEC 방문 등
국내 물가 안정까지 과제 산적
개혁 정당인 일본유신회와 보수색 짙은 자민당의 불안한 동거 속에 다카이치 내각이 첫 항해를 시작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물가 급등과 임금 정체로 인한 민심 불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일, 이시바 내각 시절 개선됐던 한일관계까지 삼중의 과제에 동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역사 인식이 비교적 온건한 편인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이끄는 내각에서 훈풍이 불었던 한일관계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는 전날인 21일 열린 국회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표를 얻으며, 제104대 일본 총리로 공식 선출됐다. 자민당과 우익 성향의 제2야당인 유신회가 손잡으며 연립정부 형태로 출범했지만, 양당 의석을 합쳐도 국회 과반에 미달한다. 게다가 유신회는 새 내각에 각료를 파견하지 않으면서 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양당이 언제든 붕괴할 수 있는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22일 사설에서 "중의원·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에 미달하는 자민·유신 연립정권의 기반 취약성은 단순한 '숫자'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를 합쳐도 과반에 이르지 않는다"며 소수 여당 체제를 '어려운 출발'이라고 연립정부의 한계를 인정했다.
정치적 기반은 약한데, 다뤄야 할 정책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눈앞의 과제는 국내 물가 안정이다. 직전 총리였던 이시바 시게루의 중도 사퇴는, 물가가 오르는데 실질임금이 줄어든 데 따른 민심 이반이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잃어버린 30년' 동안 사실상 정체돼 있던 일본의 물가가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오르자, 임금 인상과 감세를 요구하는 일본 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연 소득 103만엔의 벽(소득공제 한도)을 올려 실질소득을 늘리고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첫 각의(국무회의)에서 경제 대책 수립을 지시하고 물가 상승에 대한 대응책을 확실히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물가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물가 대응에 무력했던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노린 행보로 풀이된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당장 다음 주부터 외교 일정을 줄줄이 소화해야 한다. 당장 오는 2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집권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위비 증액 요구를 재차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 측 요구에 발맞춰 '안보 3대 전략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의 조기 개정을 지시한 상태다. 방위비 증액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외교적 행보로 해석된다. 가디언은 "그의 외교적 역량은 다음 주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일정으로 도쿄를 방문할 때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며 "이어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한국에서 국제무대 데뷔를 치르기까지 숨 돌릴 틈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이러한 행보는 다카이치 총리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일본 우선주의' 노선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과도하게 보조를 맞출 경우 일본 우선주의를 저버린 행보라는 비판이 국내 정치권과 여론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 중 일부는 그가 내세우는 '재팬 퍼스트(Japan First)' 노선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며, 국민 신뢰를 빠르게 잃고 있는 자민당이 약화한 정치적 지지를 구축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으로서는 이시바 내각을 거치며 개선됐던 한일관계가 유지될지, 다시 냉각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을 기대하고 있다"며 "한국은 일본에 있어 중요한 이웃 국가이며,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김과 화장품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말하며 친한(親韓) 이미지를 부각했다.
과거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어오고, 독도·과거사 문제에서도 강경한 '매파' 입장을 보여왔었다. 이날 발언은 이러한 기존 이미지를 의식한 듯 한국과의 협력 의지를 강조하며 우려를 누그러뜨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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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새 리더십이 진전을 약속하더라도 국내 정치적 색채가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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