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 美 국가신용등급 전격 하향
5경원 규모 연방정부 부채 지목
연 국채 이자만 1330조…국방비 초과
"시장 충격 제한적" 전망에도
美 국채, 무위험 자산 지위 균열 경고
베선트 "후행 지표" 일축…감세안 제동 걸리나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08년 만에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트리플A'에서 전격 강등한 배경엔 지속 불가능한 연방정부의 부채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 지출이 세수를 초과하는 만성적인 재정적자 속에 국채 발행으로 빚을 메우는 악순환이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경고다. 미국은 연간 국방 예산을 초과하는 규모의 이자 상환을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할 정도로 부채 구조가 비정상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월가에서는 이미 노출된 리스크란 점에서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3대 신용평가사 모두 미국에 부여했던 최고 신용등급 지위를 박탈하면서, 세계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혀 온 미 국채가 더 이상 '무위험 자산'으로 여겨지기 어렵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자 천조국' 美…성장률보다 빚 증가 속도 가팔라
무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하향 조정하며 급증하는 연방정부 부채와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 재무부, 의회예산국(CBO), 피터슨 재단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 연방정부의 부채는 약 36조2000억 달러(약 5경700조원)로, 코로나19 전인 2019년 22조7000억달러 수준에서 무려 59% 급증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107%선에서 123%(지난해)로 급등했다. 그동안 미국 GDP는 연 평균 2% 안팎 성장에 그친 반면, 부채는 연 10% 가량 빠르게 불어났다.
이 같은 부채 급증의 배경엔 구조적인 재정적자가 있다. 사회보장·의료서비스 등 의무지출이 늘어났고, 코로나19 당시의 대규모 돈 풀기까지 겹치며 재정 건전성은 더욱 악화됐다. 미 의회는 매번 연방정부의 차입 한도를 제한한 '부채 한도'를 상향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이른바 국가 부도를 막아 왔다. 막대한 부채로 인해 자동 발생하는 이자 지출도 심각한 문제다. 연방정부의 이자 지출은 2024 회계연도 기준 약 9490억달러(약 1330조원)였다. 국방비(8260억달러)를 사상 처음으로 넘어서며 연방 예산의 14%를 차지했다. 미국인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면서, 매년 지출되는 고정 비용이란 점에서 국채 이자는 가장 비효율적인 예산 항목으로 꼽힌다.
향후 재정 전망은 더 어둡다. 무디스는 GDP 대비 연방정부 재정적자 비율이 2024년 6.4%에서 2035년 9%로, 부채 비율이 같은 기간 98%에서 134%로 급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소득세·법인세 감면을 추진하면서 향후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으로 세수 감소분을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관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장 충격 제한적 전망에도…美 국채, 무위험 자산 지위 균열 경고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조치를 놓고 월가에서는 연방정부 부채 문제가 이미 알려진 리스크란 점에서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보케 캐피털 파트너스의 킴 포레스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채권 투자자들은 부채 문제를 이미 알고 있다"며 등급 강등의 시장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앞서 피치는 2023년,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2011년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에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이번 조치가 미 국채 매도를 자극하고, 나아가 달러 자산의 '무위험 자산' 지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론상 미 국가 신용이 하락하면 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투자자들은 미 국채에 그만큼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프랭클린템플턴의 맥스 고크먼 부사장 겸 CIO는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인 (감세) 계획이 재정적자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국채를 다른 안전자산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면서 미 국채 가격 하락, 달러화 추가 하락, 미 주식 매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밴더빌트 로스쿨의 예샤 야다브 교수는 "미국이 본질적인 무위험 자산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정책 입장자들이 근본적인 개혁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무디스의) 경고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이었던 중국도 미 국채를 계속 내다 팔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지난 3월 기준 7654억달러로 전월 대비 189억달러 줄었다. 올해 2월까지만 해도 2위 보유국이었으나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이면서 일본(1조1308억달러), 영국(7793억달러)에 이어 3위로 내려갔다. 미·중 관세 전쟁을 앞둔 전략적 대미 압박용이란 분석과 함께, 중국이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미 국채를 매도해왔다는 점에서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부채에 짓눌리는 미 경제에 대한 신뢰 하락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베선트 "후행 지표" 일축했지만…트럼프 감세안 제동 걸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을 조 바이든 전 행정부 탓으로 돌렸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18일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무디스 조치는 후행 지표"라며 "이번 조치는 바이든 전 행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 의료 보장 확대 등 지출 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며 "부채 증가 속도보다 GDP를 빠르게 늘리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안정될 것"이라면서 정부 지출을 줄이고, 경제 성장을 촉진해 부채 문제에 대응하겠다고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로 미 국채 금리 상승과 같은 금융시장 혼란이 발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로 지난 16일 하원 예산위원회가 감세 법안을 부결(찬성 16표·반대 21표)한 데 이어,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까지 겹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감세안 추진에 있어 정치적 부담이 한층 커졌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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