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사태가 심각하다.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2만가구를 넘어 10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인구 감소와 수요 위축에 시달리는 지방이 특히 문제다. 이 중 대구(2674가구)가 가장 어렵다.
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팔리지 않으면 건설사들의 자금 부담이 커진다. 사업 기간은 끝났는데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자금 상환과 이자 지급에 대한 압박이 거세진다. 이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시행사 혹은 시공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문을 타고 업계 전반에 자금줄이 얼어붙는다.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연쇄 부도가 발생한다.
특히 중소 건설사들이 사지에 몰린다. 통상 중소 건설사들은 자금 동원력이 약해 값비싼 수도권 땅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밀려 지방에서 살길을 찾는다. 건설사의 부도 도미노는 금융권으로 이어진다.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에 돈을 빌려줬다 받을 길을 못 찾은 중소 저축은행들이 벼랑 끝에 선다.
상황이 심각하니 정치권이 나섰다. 국민의힘은 지난 4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정부에 비수도권 미분양 해소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대출 규제를 풀어 집을 사게 하자는 것이다.
금융권도 현재 미분양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분양을 사들이는 정도의 핀셋 정책으로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시장 전반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분양가를 낮추고 특별 이벤트까지 하는데 미분양 물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보면 DSR을 완화하는 것으로도 해소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전매 제한 완화, 거래세·양도세 인하, 조정대상지역 해제 등 지방 인구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미분양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만 미분양 해소에 미온적이다. 추가 대책보다는 '8·8 공급 대책' 등 기존 정책의 집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올 초부터 시행된 1가구 1주택 특례 보유나 원시 취득세 50% 감면 등의 효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정치권의 요구에도 "기업구조조정(CR) 리츠(REITs) 조기 출시 등 기존 대책을 신속하게 집행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리츠 등록 허가는 10개월간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리츠에서는 미분양 주택을 싸게 사고 싶어 하나, 건설사들은 싸게 넘기면 살아남을 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장이 무너지기 전에 조치해야 한다. 실제 악성 미분양 숫자는 정부 발표보다 많을 수 있다. 수치를 집계할 때 건설사들은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미분양으로 촉발될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닥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늦기 전에 시장 전반을 살리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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