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은 동결, 감원을 모두 포함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계엄과 포고령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전공의와 의료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정 갈등의 시발점이 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재차 사과했다. 앞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잇달아 의대증원 정책이 잘못됐다며 내년도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 년 가까이 끌어온 의·정 갈등이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순 없겠지만 정부가 먼저 충분한 논의 없이 시작된 정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증원 계획을 되돌리겠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입장 변화다. 사직한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적용하고 입영을 연기해주는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정부가 탄핵정국 속에서도 이처럼 의료계를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무엇보다 의료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일 테다. 당장 오는 3월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의대 교육 파행을 막아야 한다는 시급함이 반영됐다. 현재 입학을 앞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지난해보다 1509명 많은 4567명, 작년 의정 갈등으로 휴학한 학생들까지 대거 돌아올 경우 무려 7000명이 넘는 의대생이 한꺼번에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 정부는 올 한 해 교원 증원과 시설·기자재 확충 등 의학교육 여건 개선에 6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하겠다며 의대생들이 복귀만 하면 수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단언했다.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오고, 전공의들은 수련 현장으로 복귀해야 앞으로 2~3년 후 전문의 배출이 가능하다. 때마침 대한의사협회장이 새로 선출돼 의료계와의 대화 분위기가 마련됐으니 지금부터 약 한 달간이 2025학년도 학사 일정을 정상화할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정부가 한발 양보하면서 이제 키는 의료계 손으로 넘어갔다. 의료계 일각에선 2026학년도 신입생을 아예 뽑지 않고 2024학번·2025학번 학생들을 올해와 내년에 분산해 수업을 듣게 하는 방법까지 거론하지만 이는 또 다른 수험생들의 대입 기회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된다. 정부가 의대증원 규모를 정하기 위해 제안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의료계도 실현 불가능한 요구는 어느 정도 내려놓고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의·정 갈등으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과 고통도 이미 극에 달해 있다. 지난달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보건의료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 인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의·정 갈등으로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특히 의·정 갈등 조절과 해결에 국민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70%였지만 국민과 환자는 소외되기 쉽다는 응답도 75%에 달했다. 정부든 의료계든 서로가 입장차를 좁히며 발전적인 해결책을 내놔야지, 각자의 주장만을 반복하면 국민적 공감을 받기 어려운 이유다. 그간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발, 휴학, 집단사직 등이 이어지면서 당초 지역의료·필수의료를 살린다는 의료개혁의 취지는 잊힌 지 오래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의정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가장 최우선에 둬야 할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다.
조인경 중기바이오벤처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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