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건을 누가 맡겠습니까. 우선 변론을 마치고 저희가 판단하겠습니다."
'STX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증권집단소송) 1심을 심리한 재판부가 지난해 10월 변론 절차를 마치며 이같이 말했다. 원고인 피해 투자자 측과 피고인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측이 소송 참여 투자자 100여명의 중복성 여부에 대해 다투자, 소송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다. 소송 자체가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점을 보여주는 푸념이기도 했다.
지난달 1심 판결이 나왔다. '기한을 넘겨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사건은 각하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허위 공시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재판부는 "투자자들은 2014년 3월21일 이전 사업보고서의 문제를 인식했고, 이 소송은 2015년 3월27일에 제기됐다"고 했다. 공시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분식회계 사실을 알았다는 원고 주장은 기각됐다.
증권집단소송은 기업의 회계부정, 허위 공시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단체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소송 개시 절차가 까다롭고 장기간 소요된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건도 피해 인원 약 2만명, 피해 총액 1000억원대로 역대 최대 규모였지만, 소송 허가에만 8년이 걸렸다. 제도가 도입되고 지난 20년간 증권집단소송 제기 건수가 12건에 그친 배경이다.
투자자 구제를 위해 도입된 법 제도가 유명무실화된다면,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 시장이 '주주 권리가 보호되지 않는 시장'으로 인식될 경우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투자자의 이탈도 막기 어려워진다. 특히 회계 부정 사건은 기업 내부에서 은폐되는 경우가 많고, 개별 투자자가 허위 공시 여부를 즉각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증권집단소송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소송 제기 기한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선 2~3년 이상의 기간을 보장한다. 문서제출명령 조항도 개선돼야 한다. 증권집단소송법 제32조는 법원이 소송 관련 문서를 가진 자에게 제출을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피고 기업이 이를 거부해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는 대신 과태료 500만~1000만원만 내는 일도 흔하다.
조성익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장은 관련 콘퍼런스에서 "일반 주주들이 사익 편취행위를 규율할 방법은 가처분을 내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것이지만, (현재) 소송은 기대이익과 비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은 사회적 약자가 찾아가는 최후의 보루다. 법원에서 진행되는 증권집단소송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국 증시가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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