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지병으로 사망…77세 일기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76년) 당시 교사 구타 등 폭력을 주도해 마오쩌둥에게 예명까지 하사받은 홍위병의 상징 쑹빈빈(宋彬彬)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지병으로 77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쑹빈빈은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년 8월 18일 천안문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팔에 직접 홍위병을 상징하는 붉은 완장을 채워준 인물로 유명하다. 중국 혁명원로 쑹런충(宋任窮) 상장(한국식으로는 대장)의 딸로 문화대혁명 때 베이징사범대 부속여중의 학생으로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
마오 주석은 쑹의 이름에 빈이 '논어'에 실린 겉과 속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의 "문질빈빈(文質彬彬)의 빈인가?"라고 물었다. 쑹이 "그렇다"고 답하자, 마오는 "무력이 필요하지 않나(要武?)"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쑹은 '야오우(要武)'로 이름을 바꿨다. 쑹은 마오 주석에게 이름을 새로 받은 직후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며 "위대한 뜻의 이름을 얻었으며, 마오 주석은 우리에게 방향을 밝혀줬다. 우리는 폭력이 필요하다"며 학생을 선동했다.
이후 쑹은 학생이 교사를 구타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등 전국적인 무장투쟁에 앞장섰다. 당시 쑹이 모교의 볜중윈(卞仲耘) 교감 등 7~8명을 직접 구타해 숨지게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후 쑹은 유학을 핑계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자신도 노인이 된 2014년에야 80, 90대 은사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는 "학교 질서를 앞장서 파괴하고 선생님들을 괴롭혔다"며 약 1500자 분량의 '나의 사죄와 감사'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40여 년 동안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아는 '쑹빈빈'과 문혁 폭력의 상징이 된 '쑹야오우'라는 2개의 내가 있었다"며 "오랫동안 직접 얼굴을 뵙고 참회하는 기회를 희망해 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볜 교감의 유가족은 쑹의 사과를 거부했다. 홍위병들의 사과는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유가족은 볜 교감이 죽은 지 48년이 지났지만, 당시 일을 계획하고 사람을 죽인 이들은 여전히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쑹빈빈은 보스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시민권까지 얻어 영국계 회사의 오너 겸 CTO로 재직했다. 베이징부속사범대의 명예동문 9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의 상당수 중고생과 대학생들이 홍위병이라는 이름으로 마오쩌둥이 조직한 정치적 대중운동조직에 동원됐으며 당시 이들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박해를 받아 사망한 사람이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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