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청년 게임에서 유래
더 많은 고객 확보 위한 가격 출혈 경쟁
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의 주도권을 쥐려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치킨 게임’에 돌입했다. 가격 출혈경쟁을 해서라도 더 많은 고객이 AI 챗봇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근 생성형 AI 이용료를 내리거나 무료화한 빅테크가 늘고 있다. 미국의 오픈AI가 최신 거대언어모델(LLM)인 GPT-4o(포오)의 가격을 100만 토큰(문장의 최소 단위)당 7달러에서 4달러로 인하했다.
중국 기업은 더 적극적이다. 틱톡으로 유명한 기업인 바이트댄스는 두바오 프로를 내놓으며 “GPT-4보다 99%나 싸다”고 홍보했다. 텐센트와 바이두는 경량화된 AI 모델을 공짜로 내놓았다. 업계의 경쟁은 이처럼 성능에서 가격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치킨게임은 경제학 게임이론의 모델 중 하나다. 대립하는 두 명의 게임 참여자(Players) 중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쪽이 이득을 보지만, 둘 다 포기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가 벌어지는 게임이다. 이는 정면충돌을 불사하고 서로를 향해 차량을 돌진하는 1950년대 미국 청년들의 담력 대결에서 유래했다.
두 명의 운전자는 충돌 직전에 계속 돌진할지, 핸들을 돌릴지 결정한다. 핸들을 돌려 충돌을 피한 운전자는 겁쟁이(치킨)로 취급된다. 만약 둘 다 핸들을 꺾지 않으면, 정면충돌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상대방이 핸들을 꺾게 할 전략으로 ‘미치광이 전략’을 꼽는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은 핸들을 꺾지 않을 만큼 비합리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핸들을 뽑거나, 양손을 뒤로한 채 수갑을 차는 식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도 이와 같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은 국면을 전환하거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과격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이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 한·미 방위 분담금 협상과 FTA 재협상에서 나온 폭탄 발언들은 유리한 협상을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겉보기와는 달리 치밀한 실리주의 전략이란 평가다.
기업끼리의 치킨 게임은 주로 가격 대결로 나타난다. 2000년대 중반 반도체 업계에서 일어난 가격 경쟁이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반도체 업계는 극단적인 가격 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친 시기였다. 당시 주력 제품이던 512MB(메가비트) DDR2 D램 가격은 2006년 6.8달러에서 2009년 0.5달러까지 떨어져 버린다.
이 여파로 독일의 반도체 기업 키몬다와 일본의 엘피다는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반면, 경쟁 승리자인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올라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배달 플랫폼 업계의 무료 배달 서비스 경쟁도 마찬가지다. 쿠팡은 유료멤버십인 ‘와우회원’ 이용료 인상과 함께 멤버십 고객에만 쿠팡이츠 무료 배달을 결정했다.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부터 알뜰배달 무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요기요는 배달 구독 서비스인 ‘요기패스X’ 이용요금을 월 99000원에서 2900원까지 낮췄다. 고객 쟁탈전을 위한 치킨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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