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북한에 붙잡힌 김정욱 선교사
11년째 억류…형 정삼씨 "생사 확인이라도"
오는 11월 북한 UPR…국제사회 연대 촉구
"11년 전 이맘때였어요. 추석을 앞두고 동생이 찾아왔지요. 국수공장에서 북한 주민에게 나눠주던 선물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고민하더라고요. 명절이라도 쇠고 가라고 했더니, 선교 일로 바쁘다고 떠났어요.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북한에 11년째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의 형 정삼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선교 떠난다더니, 동생 모습이 '뉴스 특보'로
2013년 10월 북한은 김 선교사를 평양에서 체포했다면서, 그를 앞세운 기자회견 장면을 송출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선교활동으로 바쁜 줄 알았던 김 선교사의 모습이 뉴스 특보에 담겼다. 형은 그제야 동생이 북한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삼씨는 "딱 이맘때였다"며 잠시 숨을 골랐다. "다시 북한 주민들을 도우러 간다면서 떠난 동생의 모습이 생생한데, 불과 며칠 만에 TV에서 그런 뉴스가 쏟아졌다"며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큰일났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북한은 국가전복음모죄·반국가선전선동죄·비법국경출입죄 등 혐의를 적용했다. 이듬해 5월 재판에선 '무기노동교화형'이 선고됐다. 무기징역과 같은 형벌이다. '국가전복음모죄'는 장성택을 처형할 당시 적용된 죄목이다. 김 선교사가 내란을 기도했다는 의미다.
당시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김 선교사가 혐의를 시인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당국의 통제 아래 모든 외부 접촉을 차단한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진행된 재판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북한 매체들은 "동족대결책동에 동조하면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준다"며 김 선교사를 선전·선동 사례로 활용했다.
"형, 북한 주민들이 안타까워 잠이 오지 않아"
김정욱 선교사는 8남 1녀 중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정삼씨는 김 선교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던 때를 떠올렸다. "동생이 하루는 '형, 나는 북한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주민들이 안타까워 잠을 못 자겠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2007년 단기 선교를 위해 단둥을 다녀온 뒤 2008년부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탈북민과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작은 국수공장을 차렸다. 숙식도 제공했다. 주민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때면 옷가지와 먹거리, 돈을 쥐여 주며 살뜰히 챙겼다.
김 선교사가 언제, 어떻게 북한으로 들어갔는지, 혹은 북한의 유인에 끌려간 것인지 등은 확인된 바 없다. 다음달 8일이면 만 11년이 되지만,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김 선교사의 형제들도 열악한 나라들을 찾아 봉사하는 '선교사 집안'이다. 정삼씨는 "동생뿐만 아니라 북한에 억류 중인 다른 선교사들 역시 선한 말씀을 전하려다 이렇게 된 것 아니겠나"라며 "사랑과 평안을 전하겠다는 좋은 취지에 역행하지 말고, 이제는 북한도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먼저 눈감으신 아버지, 속절없이 흐른 11년
해마다 추석이 돌아올 때면 가족들은 애써 아픈 마음을 달랜다. 아버지는 아들의 억류를 수년간 모른 채 지냈다고 한다. 정삼씨는 "명절이 돼도 동생이 보이지 않으니 '왜 정욱이 얼굴이 안 보이냐'면서 보고 싶어 하셨다"며 "계속 선교활동을 하느라 바쁜 줄로만 아셨는데, 2년쯤 지나서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고 했다.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김 선교사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이 억류된 지 4년 만인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잠시 실마리가 보였던 때도 있었다. 정삼씨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모두가 '이번 기회에 억류자가 풀려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기대했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던 문재인 정부 시기는 억류자 송환을 위한 '골든타임'으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적극적인 송환 요청을 하지 않았다. 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 가운데 1~2차 땐 송환 요청이 있었지만, 북측으로부터 생사조차 확인받지 못했다. 마지막 3차 정상회담에선 아예 송환 요청도 하지 않았다.
정삼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위 사람들이 동생의 안부를 물으면서, 정부와 북한을 향해 가족보다 더 화를 낸다"며 "감감무소식이라는 답밖에 할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삼씨 "국제사회 연대 통해 북한 움직이길"
정삼씨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에 중점을 두는 현 정부 방침에 다시 한번 희망의 끈을 다잡고 있다. 그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정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통일부가 억류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마음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정부와 북한인권단체들은 오는 11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진행될 보편적 정례 인권검토(UPR)를 앞두고 대북 압박에 나섰다.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실상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각국이 억류자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권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주한 외교사절들을 대거 불러 모아 가족들의 호소를 전하기도 했다.
정삼씨는 "추석이 다가올 때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며 "하루빨리 생사를 확인하고, 석방과 송환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동생이 어떻게 지낼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지만, 북한 주민들이 그런 자유가 없는 아픔과 고통을 계속해서 겪고 있다는 사실도 안타깝다"며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북한을 움직여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북한은 2014년 김국기·최춘길 선교사를 억류했다. 2016년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민 3명을 추가로 붙잡았다. 이들 모두 선교사다. 현재까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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