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경쟁담당 집행위원 중심 규제에 집중
ECB 전 총재 "경제 위해 혁신해야" 비판
애플·구글, 과징금 불복 소송 패소
폰데어라이엔 '2기'서 정책 바뀔지 주목
유럽연합(EU)이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기술 분야 규제 여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2018년 개인정보 보호법을 비롯해 IT 기업을 압박하며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나간 EU였지만 이제는 경제 강국을 따라잡기 위해 디지털 혁신을 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에서 EU가 이러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선 지난 9일(현지시간)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첨단 기술 규제를 멈추고 혁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EU 집행위원회가 의뢰한 보고서 'EU 경쟁력의 미래'를 통해 미국,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연간 7500억~8000억유로(약 1180조원)의 신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생산성 저하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려면 그동안 해온 기술 규제를 중단하고 첨단 기술을 직접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EU 반도체 전략도 별도로 수립해 EU 예산을 통한 반도체 부문 공동 지원, 신규 사업 패스트트랙 승인을 비롯해 역내 공동·민간입찰 사업 촉진을 위한 'EU 반도체 인증제도' 신설 등을 제안했다.
이러한 드라기 전 총재의 발언은 그동안 EU 집행위가 실행해온 기술 규제를 사실상 저격한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EU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경쟁담당 집행위원을 중심으로 빅테크 기업 등을 타깃해 독점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공정한 경쟁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 곧 EU 내에서도 기술 혁신을 이뤄낼 것이라고 보고 디지털서비스법(DSA)·디지털시장법(DMA) 등 관련 법도 제정했다.
EU가 이러한 정책을 이어가면서 유럽은 IT 관련 규제기관으로서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고히 해왔다. 유럽의 규칙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되는 이른바 '브뤼셀 효과'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였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드라기 전 총재의 발표 다음 날인 지난 10일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애플과 구글이 EU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EU 집행위 손을 들어줬다. 이로 인해 애플은 143억유로, 구글은 24억유로라는 막대한 과징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2016~2017년 베스타게르 담당이 부과한 과징금이었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ECJ 판결 직후 "이번 소송은 가장 힘센 테크 기업들조차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소송"이라며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전날 드라기 전 총재가 보고서에서 "경쟁의 장을 만들려는 정책 집행이 혁신에 해가 될 수 있다"며 EU 집행위가 과거 지향적인 정책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드라기 전 총재는 혁신을 위해 국방부터 통신까지 여러 분야에서 합병을 허용하고 인공지능(AI) 분야의 다국적 벤처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유럽은 노키아와 에릭슨처럼 1990년대에 모바일 혁신 선두주자가 있어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에 번영했던 과거가 있다"면서 이후 미국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두 사건이 EU가 직면한 딜레마를 요약해 보여줬다"며 "EU가 미국과 중국 등 경제 강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디지털 부문을 확장해야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드라기 전 총재와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의 기술 분야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당분간 EU 내에서 치열한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올해 11월 이후 출범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2기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현행대로 기술 규제를 강화해 나갈지, 기술 혁신을 추구할지를 놓고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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