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美, 러 원유 수출금지 검토에…유가 폭등, 커지는 S 경고음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이현우 기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결국 ‘대러시아 제재’의 핵심인 원유 수출 금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며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있다.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18% 치솟아 배럴당 140달러에 육박했다. 이대로 라면 배럴당 200달러 돌파는 시간 문제란 평가다.
폭등하는 국제유가를 지켜보는 경제 전문가들의 시선에도 우려가 깊다. 유가 급등부터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 동유럽을 겨냥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까지 1970년대의 악몽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오일쇼크 당시처럼 성장이 주저앉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함께 재연될 것이란 분석도 쏟아진다. 지금처럼 1년에 걸쳐 유가가 무려 두 배 뛰었던 1990년, 2000년, 2008년 모두 글로벌 경제에 쓰나미가 몰아쳤다는 과거 사례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고음이다.
◇"푸틴 멈추게 할 유일한 길" 원유 수출 금지 검토에 유가 폭등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배럴당 139.13달러에 거래됐다. 미국산 유가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급등세를 보이며 배럴당 130.50달러를 기록했다. 각각 2008년 7월 이후 최고가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39달러대까지 치솟아 장중 상승폭이 한때 18%에 달했다. 이는 1998년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68달러대였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오른 수준이다. WTI 역시 1년 전 63달러대에서 이날 두배로 뛰어 올랐다.
이 같은 유가 급등세는 미국이 유럽연합(EU) 등 동맹국과 함께 러시아산 석유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데 따른 여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이날 CNN에 출연해 "양쪽(유럽과 미국) 시장에 충분한 원유 공급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NBC, CBS 방송에서도 "모든 조치들에 대해 활발히 토론 중이며 곧 실행될 것"이라고 조만간 에너지 제재 카드가 단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동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에너지 금수’가 빠진 대러 제재는 구멍이 숭숭 뚫린 조치(시사지 타임)"라는 지적에도 에너지 제재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러시아에 타격을 주는 것만큼 미국과 동맹국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전 세계 수출량의 11%를 담당하고 있다. 자칫 에너지 제재 과정에서 국제 유가와 각국 기름값만 폭등시킬 것이란 우려도 잇따랐다. 이미 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으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를 상대로 괜한 강수를 둘 필요가 없었던 셈이었다.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잇따른 제재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를 막지 못하자, 결국 러시아산 원유 수출을 막는 방안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의 스콧 셰필드 대표는 "러시아가 스스로 전쟁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약 1200억달러(약 146조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협상에 어깃장을 놓은 것도 이날 국제유가 급등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 앞서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이란 핵합의를 엎을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다만 RBC 캐피털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일부에선 이란 핵합의가 치솟는 국제유가를 낮출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이 또한 러시아발 혼란을 메우기엔 너무 작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 각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출 중단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해법을 모색 중이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의 전략 비축유 사용이 가능한 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은 이 같은 일환으로 베네수엘라와 원유 수출 제재 완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베네수엘라와의 회담 소식을 전하며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내릴 경우 이를 베네수엘라 원유로 대체하기 위한 협상이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석유협회 회장인 헤이날도 퀸테로는 "베네수엘라를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석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3차 오일 쇼크 올 수도"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도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금지될 경우 러시아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반에 직격탄은 불가피하다.
당장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이선 해리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원유 수출 500만배럴이 중단되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로 올라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JP모건 역시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유가가 배럴당 185달러까지 치솟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시장에서는 제재에 앞서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피하는 움직임들이 확인되고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66%가 바이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중동 산유국이 미국과 서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원유 공급을 끊어 1차 오일쇼크를 일으킨 1973년, 이란 혁명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했던 1978년 등을 언급하며 "‘3차 오일쇼크’로 불릴 만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더딘 경제 회복과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에너지 쇼크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데이터트랙 리서치의 니콜라스 콜라스 공동창업자는 투자자 노트를 통해 "역사적으로 유가가 1년간 두 배로 뛰었던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이후 경기침체가 머지않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BoA의 글로벌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내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애널리스트의 비율은 30%로 높아졌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며 "이는 중앙은행에는 악몽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을 가속화해야 하지만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출 것"이라면서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각종 부양책을 통해 탄약을 쏟아부은 각국 정부도 재정 정책에 의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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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이미 에너지, 곡물 가격 등 상승이 유발됐다며 "전쟁의 지속과 이와 관련된 제재는 이미 인플레이션 문제가 존재하는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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