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물가' 재소환한 기재부…14년 전 'MB 물가지수' 실패 데자뷔
글로벌 인플레 속 민간 물가 억제에 한계
기재부, 소관부처 업무평가에 '주요 품목 물가관리 현황' 반영까지 검토
MB 물가지수 데자뷔 우려…"유동성 회수 없인 물가관리 어려워"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손선희 기자] 기획재정부가 치솟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학원비, 영화관람료는 물론이고 가전제품, 자동차 등 민간 수출품목 가격까지 소관 부처가 관리토록 한 것은 도를 넘는 '관치경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도입했다가 실패한 'MB 물가지수'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기재부는 소관부처의 물가관리 성적을 정부업무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가 이들 부처가 반발하자 뒤늦게 철회하기도 했다.
◆원자재값 뛰는데 車가격 인상 막으라니=부처 물가관리 품목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의 관리가 기업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우리 기업의 원가 상승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정부가 물가관리 명목으로 가격을 들여다보면 시장논리가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요 물가관리 품목에 포함된 자동차의 경우 가격 강세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격이 뛰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물류대란 등에 따른 신차 공급 지연으로 주요국의 신차 가격은 물론 중고차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의 중고차 매물 평균가격은 2021년 11월 기준 전년 대비 29% 상승했다. 유럽의 10월 중고차 평균가는 연초 대비 28.3%, 일본은 비슷한 기간 1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카플레이션'이다.
카플레이션은 자동차 수요 증가도 있지만 원자재 급등 영향도 크다. 열연강판은 미국 중서부 가격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502달러로 2020년초(603달러) 대비 149% 올랐다. 같은 기간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은 각각 112%, 146%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가격을 모니터링 한다면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산 기업 대비 우리 기업이 역차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물가관리 품목 중 하나인 학원비도 마찬가지다. 임대료와 임금 등이 오르는 상황에서 학원비 인상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대형 학원은 물론 소규모 영세업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법원도 이미 학원비 통제에 불가 판단을 내린 상태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강남교육지원청이 학원을 대상으로 한 수강료 동결 조정결정에 대한 학원들의 소송에서 학원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반시장적 임시방편으로는 물가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8%로 1996년 5월 이후 2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소비자물가상승률도 2.5%로 10년만에 최고다.
◆기재부, 물가관리 부처평가 검토하기도=특히 기재부는 '물가 부처책임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주요 품목에 대한 물가관리 현황을 정부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업무평가는 국무조정실이 주관하지만 기재부 장관도 정부위원으로 참석하는데, 각 부처의 물가관리 성적표를 평가지표로 반영하려던 것이었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다행히 다른 부처가 강력하게 반발하며 부처 평가 반영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면서도 "기재부가 추경 편성 등 확장 재정에 힘을 싣는 상황에서 물가를 못 잡으면 타 부처에 불이익을 주겠다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 안팎에선 기재부의 물가 부처책임제 추진이 14년 전 실패한 MB 물가지수의 데자뷔가 될 것이란 지적이 높다. 생필품 등 52개 품목을 담은 MB 물가지수가 도입된 2008년 3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13% 올랐는데, MB물가지수는 두 배에 가까운 20%가 올랐다. 결국 이번 물가 부처책임제 또한 물가 상승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 기업과 경제에 잠재적 부담 요인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물가안정 대책이란 게 기재부 단독으로는 할 수 없고 부처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각 부처가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이 자율화돼 있는 상황에서 업계의 가격 인상은 정부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며 "정부가 지원해 비용부담을 줄이거나 유통구조 경쟁을 촉진해 가격 상승을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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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은 유동성으로 물가안정을 위해선 통화당국의 금리인상 등 유동성 회수가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물가를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물가안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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