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중대재해법 시행 코앞인데…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중대재해법 내년 초 본격 시행…기업 생존 리스크 우려
빚 내서 설비 투자 하기도…“파산 무릅써야 할 정도”
中企 77.3% "준수 어려워"…대기업도 처벌 남용 ‘긴장’
중대재해 발생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합동감식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울산경찰청이 국과수 등과 함께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사고 현장을 합동 감식하고 있다. 이 공장에선 지난 5월30일 노동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2021.6.3 can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황윤주 기자, 김희윤 기자, 이준형 기자] #.경기 시흥에 위치한 뿌리기업 A사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비용 문제로 선뜻 생산설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위험감지 시스템 등을 도입하려면 생산라인 3개에 총 24억원의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견적을 받았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18억원이었다. A사 대표는 "모든 설비에 안전센서를 부착하는 등 시스템을 갖추려면 파산을 무릅써야 할 정도"라며 "뿌리기업 업계에서는 만약 일이 생기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경기 화성에 위치한 알루미늄 가공업체 B사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해 올 하반기부터 총 12억원을 들여 생산라인에 안전센서를 설치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했다. 지난해 올린 매출액(약 22억원)의 절반 이상을 공정 개선에 쏟아부었다. B사 대표는 "중대재해법을 피하려면 빚을 내서라도 설비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싸고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달 뒤면 법 적용을 받게 되지만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곳이 많고 대비를 하더라도 비용 부담이 큰 데다가 대상과 사업주의 책임 범위 등에 대한 혼란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준비 관련 설명회에서 기업들의 우려가 쏟아진 이유다. "준비를 하려고 해도 시간은 부족하고 당장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행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은 부족해 자칫 입법 취지와 달리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인 것이다.
중대재해법 리스크 맞는 中企
실제로 중기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 하반기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준비 및 애로사항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66.5%가 법에 규정된 경영책임자의 안전과 보건 확보의무를 시행일까지 준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이 수치는 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에선 77.3%까지 치솟았다. 이유에 대해서는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경기도 안성에서 자동차부품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김태근 대표(54·가명)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는 강화하는 것이 맞지만 현재 시행령을 보면 대표가 감당할 의무범위가 너무 넓고 관련법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사고 발생 시 대표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은 막대한 벌금과 징벌적 손해배상,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파산에 내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울산 소재 한 건설사 현장소장 이영식(가명)씨는 "대부분 하청기업이 공사현장을 맡고 있는데 노동자는 며칠 사이에 바뀌기 일쑤고 외국인 노동자 안전교육도 빠듯한 게 현실"이라며 "책임을 대표가 져야한다고 하니 요즘엔 오너가 뒤로 물러나고 나중에 사고 나면 책임 피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는 곳이 많다"고 했다.
처벌 남용 대기업도 우려
대기업들도 막막함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안전 전담 조직을 꾸렸더라도 여전히 중대재해 정의나 의무주체 범위, 준수 범위 등이 모호해 처벌 남용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최근 안전조직과 별개로 산재 관련 법무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대기업 관계자는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기업이 노조와 함께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앞으로는 사고 원인, 비용과 근로자 측과 시비를 따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업이 먼저 책임을 인정하거나 수습에 나설 수 없어 사고가 발생하면 각각 변호사를 선임해 치열하게 법리 논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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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때마다 최고경영진이 형사 처벌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대기업들이 온 연말 조직개편 등을 통해 안전 관리와 책임을 지닌 CSO(안전보건 담당임원) 직책을 속속 선임하고 있지만 처벌대상은 최고 경영진까지 확대 적용될 소지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그룹 가운데 지주사 체제로 변경하거나 안전 관리와 책임을 지닌 CSO 직책을 신설하는 것이 12월 전후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라며 "산재 사고로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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