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요시위' 집회 장소서 보수단체와 갈등 여전...'평화의 소녀상'은 가려져
대면으로 전환된 '수요시위'...보수단체 반발로 집회 현장 '아수라장'
보수단체 "우리가 먼저 집회 신고" vs 반일행동 "소녀상 지킬 것" 1년 넘게 충돌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니혼세이후와 샤자이세요."(일본정부는 사죄하라.)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517차 정기 수요시위는 일본말 배우기로 시작됐다. '니혼세이후화 샤자이세요'는 '일본정부는 사죄하라'라는 뜻이다. 수요시위는 1992년부터 1월8일부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우 수요일 정오에 열리고 있는 집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대규모 감염 우려 때문에 집회가 제한되면서 수요시위도 비대면으로 진행됐지만, 11월1일 이후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으로 방역체계가 전환되면서 대면 집회가 허용됐다. 수요시위를 주도하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는 "코로나 이전에는 학생이나 시민들이 많이 오셔서 시위를 함께하고는 했다. 하지만 코로나 유행 때문에 일년 넘게 비대면으로 진행되거나 1인 시위만 하면서 소녀상 근처 구석에서 작게 시위를 하고는 했는데 이제 이전처럼 많은 시민들이 찾아주시니 반갑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요시위가 진행된 곳은 '평화의 소녀상' 옆이 아니었다. 보수성향 단체인 자유연대가 이십여년 가까이 이어온 집회 자리를 선점하면서 정의연은 '평화의 소녀상'에서 15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먼저 사전 집회 신고를 했다는 자유연대에 '반일행동'이 '평화의 소녀상' 훼손을 우려 때문에 이 공간을 비워줄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양 진영은 그간 충돌을 빚어왔다.
반일행동은 친일세력 청산을 주장하는 단체로 소녀상 앞에서 철야농성과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철야농성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졸속 처리에 반발하면서, 연좌농성은 작년 6월 한 보수단체가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에 반대해 집회를 연다는 데 반대하면서 시작했다. ·
'평화의 소녀상' 근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양 진영의 충돌은 여전했다. 정의연의 수요시위에 반대하는 자유연대·반일동상진상규명공동대책위원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보수단체들의 반발 시위가 동시에 전개됐는데, 보수단체는 확성기로 "위안부 사기"를 연신 외치는가 하면 태극기를 두른 채 냄비를 치기도 했다. 또 충돌을 막기 위해 배치된 수십명의 경찰과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까지 뒤얽히면서 수요집회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는 '평화의 소녀상' 근처 공간에 먼저 집회신고를 한 것은 자신들이기 때문에 반일행동이 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소녀상에서 불과 약 3m정도 거리에 위치한 자유연대 천막에서 만난 한 60대 시민 A씨는 "집회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 아니냐. 자유연대가 먼저 집회신고를 했는데 (소녀상 옆 일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반일행동을 향해) 저렇게 불법 점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울 한복판에서 천막치고 뭐하는 거냐"라고 말했다. 반일행동은 평화의 소녀상이 극우단체에게 훼손될 것을 우려해 소녀상 뒷편에 천막을 쳐놓은 상태였다.
한일관계가 걱정돼서 찾아왔다고 말한 다른 50대 시민 B씨은 "소녀상 앞에 있는 건물 7~8층을 일본대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며 "기시다 총리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주도하지 않았나. 합의하고 다 끝난 일로 이러면 일본이 어떻게 생각하겠나"라고 말했다.
보수단체와 반일행동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시민들은 수요시위에 참여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외쳤다. 경찰이 설치한 펜스 안에서 진행된 시위에는 평화나비네트워크·부천시민연합·여행학교 로드스꼴 등의 단체와 시민들이 참여했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비교적 차분하게 집회가 이어졌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수요시위에 참석한 60대 시민 C씨는 양 진영의 목소리가 뒤섞여 어지러운 집회 현장 속에서도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춥고 하지만 이렇게 시위 현장에 있으니 좋다"라고 말했다.
첫 수요시위 때부터 참여했다고 밝힌 C씨는 "나 어렸을 때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서 교육이 전혀 없었다. 위안부 문제를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처음 알았고, 이후에 직접 시위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배우게 됐다"라고 말했다. 여명의 눈동자는 1991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평화의 소녀상 있는 곳은 28년간 '수요시위'가 이어지면서 여성 평화와 인권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 곳"이라며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보수단체가 와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것은 그들이 이끌어온 여성 인권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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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실장은 이어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곳이 세계적인 평화 교육의 장으로서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수요시위'에 많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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