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어떻게 '20년 아프간 전쟁'을 끝냈나
국민 반정부 여론 활용…정부군도 포섭
점령지내 임시 정부 구성으로 주민과 연결고리 강화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 관계도 중시
공포정치 부활 조짐에 반발 여론도 극심
"모든 국민들의 지지 얻는 것이 관건"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시작된 이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지난 9일 처음으로 주요 도시를 점령한 데 이어 6일 만에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20년 전 미군의 침공으로 순식간에 정권을 잃은 탈레반이 극적으로 부활한 모습이다.
이처럼 국제 사회의 충격을 자아낸 탈레반의 승리는 지난 몇 년 간의 준비 과정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 ICG)의 탈레반 전문가 이브라힘 바히스는 "탈레반의 진격은 매우 빨리 진행됐다"라면서도 "사실 이는 몇 년간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내놓은 분석도 이와 유사했다. WSJ는 탈레반이 "서방 연합군의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라며 "서방 군의 인권 침해에 따른 국민의 분노를 이용했으며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를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의 반정부 여론 활용…정부군도 포섭
먼저 탈레반의 승리 배경 중 한 요인으로 탈레반 측이 반정부 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 몇 년 간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면서 정부 관료가 조직범죄에 가담하고 직접 마약을 밀수하는 행위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정부의 이러한 부패 이미지가 오히려 탈레반에 상대적으로 청렴한 이미지를 가져다줬으며 아프간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대거 탈레반에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카불대의 무함마드 잘란드 정치학 교수는 "탈레반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들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어떻게 이용할지 잘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탈레반이 평소에 중앙정부에 불만이 컸던 정부군 병력을 회유해 이들을 포섭한 것도 탈레반 전력 강화에 이바지했다.
그동안 아프간 정부군 병사들은 중앙정부의 재정 부채로 인해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탈레반은 이를 이용해 정부군 병사들에게 150달러를 제시하며 탈레반에 합류할 것을 회유해왔다. 150달러는 정부군 병사들의 평균 월급에 달하는 수준이다.
탈레반은 지역 군벌과 밀실 합의를 하며 중앙정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들의 항복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탈레반은 이미 점령한 지역을 대상으로 `그림자 정부`를 세워 세금 부과, 공공 서비스 제공, 병력 모집 등 향후 국가 정부 구성을 위한 준비 작업을 착실히 수행해왔다는 것이 탈레반 승리에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탈레반이 그림자 정부가 발달함에 따라 점령 지역을 대상으로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인 정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과거 90년대 탈레반 정권 당시와 유사하게 이슬람 율법을 기반으로 한 사법 체계를 구축해 시행했는데 이것이 정부의 사법 체계보다 더 원활하게 작동하면서 치안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WSJ는 전했다.
잘란드 교수는 탈레반의 그림자 정부가 "탈레반의 점령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라며 "이는 반대로 아프간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시켰고 탈레반과 주민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줬다"라고 분석했다.
2014년 취임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은 일생 대부분을 해외에서 살아왔으며 자신의 측근들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인물들이었다. 아프간 현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가니 대통령이 국민과의 연결고리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특히 탈레반 점령 지역은 정부군과의 전투가 사실상 전무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다. 이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자 정부의 교육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됐지만, 정부군 점령 지역은 탈레반과의 전투가 수시로 진행되면서 기초적인 교육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할 만큼 치안이 불안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아프간의 불법 마약 무역과 이란과의 석유 무역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며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것도 탈레반의 또 다른 승리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 관계 중시
아울러 과거와 달리 탈레반 측이 국제 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탈레반은 국제 사회와의 관계 설정에서 연계 조직 하카니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과 손을 잡은 조직이다.
탈레반은 20여 년 전 파키스탄에 의존하며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하카니 네트워크를 이용해 이란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도 접근하며 이들 국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중국으로부터 합법 정부로 공식 인정받을 수 있었으며 러시아 측은 카불 대사관을 계속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란 역시 탈레반의 손을 들어주며 아프간 정부 실패 배경에 미국이 있다며 반미 여론전에 나선 것도 탈레반의 승리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아프간 국민들과 국제 사회는 탈레반의 반인륜적 통치 행위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우려하고 있다. 시민들은 과거 90년대 말 탈레반 정권이 일삼아왔던 가혹한 통치 정책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실제로 최근 몇 달 간 탈레반은 아프간 주요 지역을 점령해가는 과정에서 여성들을 탈레반 병사들과 강제 결혼시키거나 회사에서 여성을 내쫓아내는 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 정부를 장악한 이후에도 탈레반은 시민들의 집을 급습하며 미군과 협력한 현지인들을 색출해냈고 도시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며 시민들을 불시에 검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탈레반의 공포정치가 가시화될 조짐에 이에 반발하는 시위도 진행됐다. 18일 아프간 동부 주요 도시 잘랄라바드에서는 수백여 명의 주민들이 탈레반 정권에 항의하는 첫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날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했으며 최소 2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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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탈레반이 아프간 국가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반대파와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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