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더워도 뭘 어쩌겠나" 땡볕 아래 '길거리 식사'에 지친 노인들
코로나19 확산 이후 노인 복지시설 축소 운영
탑골공원 일대서 만난 노인들, 길 위에서 도시락 먹는 경우도
노인들 "덥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토로
[아시아경제 허미담·김서현 기자] "아이고, 덥긴 한데 뭘 어쩌겠어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김모(68)씨는 연신 흐르는 땀을 훔쳤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식소를 방문했다는 김 씨는 "안 그래도 마스크 때문에 숨쉬기가 가쁜데, 올해 유난히 더운 것 같아 많이 힘들다"며 "이제 폭염이 더욱 심해질 거라는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배식을 받고 나서는 지인들과 모여 길거리에서 밥을 먹는다. 집으로 가져가서 먹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집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앉아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이어 "나이가 드니 어디 갈 곳이 마땅히 없다. 그래도 여기 오면 끼니도 해결하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으니 더위를 참고 오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11시께 탑골공원 일대에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서 연신 손부채질을 해가며 더위를 식혔으나,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 힘든 기색을 내비쳤다. 더운 날씨 탓에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무료 급식소 앞에서 만난 황모(62)씨는 "오전 11시30분 정도 되면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선다. (급식소 측에서) 요구르트, 빵, 오이냉국 정도를 포장해서 나눠주는데 먹을 만하다"라며 "밖에서 먹으면 덥긴 하다. 배식받는 사람 중 집이 없는 노인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상자 같은 걸 깔아두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땡볕 아래에서 바둑 두면서 배식받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꽤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코로나19 전파 우려로 인해 탑골공원 인근 무료급식소 실내 이용은 제한된 상태다.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은 배식받은 음식을 집에 가져가거나, 그늘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흐르는 땀을 훔쳐 가며 밥을 먹는 수밖에 없다.
무료 급식소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밝힌 김모(73)씨는 "새벽에 미리 번호표를 받아 오전 11시30분부터 차례대로 배식받아 먹는다"라며 "덥긴 하지만 나는 집이 급식소 근처라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또 무료로 음식을 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은 길 건너 다른 노인들과 모여 먹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서울시도 최근 사회복지시설 운영 방침을 새롭게 조정했다. 이로 인해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경로당(3468개소)은 실내취식금지, 이용정원 50% 이하 운영을 원칙으로 하게 됐다. 다만, 운영중지 여부 등은 자치구 판단하에 결정하기로 했다.
경로당과 복지센터 축소 운영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이 탑골공원 등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셈이다.
관련해 무료급식소의 한 자원봉사자는 실내 급식소 운영이 불가해지면서 일부 급식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 봉사자는 "현재 코로나 사태로 인해 어르신들이 실내 급식소에서 바로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 집에 가져가서 드시는 경우가 많다. 집이 없으신 분 같은 경우, 마땅한 대책이 없다"라며 "덥다고 푸념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신다. 그런 분들을 위해 선풍기를 틀어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더위는 노인 등 폭염 취약 계층에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무더위에 취약한 고령자 등은 실외활동 시 고온에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온열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온열질환은 더운 날씨에 장시간 노출될 때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을 뜻한다. 실제로 질병관리청 등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온열질환으로 96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 중 60%가 60살 이상 고령층이었다.
올해도 폭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두 달간(5월20일~7월17일)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로 신고된 온열질환자가 총 436명이며, 이 중 열사병 추정 사망자는 6명에 달했다. 특히 폭염이 이어진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열사병 추정 사망자가 3명이나 나오기도 했다. 이들 사망자는 모두 50대·60대·80대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숨졌다.
탑골공원에 자주 방문한다는 박모(68)씨도 무더위를 걱정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점심시간만 되면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줄을 쫙 선다"라며 "더위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나. 덥다고 해서 실내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는 거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폭염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기상청은 20일 이후 뜨거운 공기를 품은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만나 '열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열돔은 뜨거운 공기가 돔이나 뚜껑의 형태로 지면을 감싸는 현상을 뜻한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보건당국은 폭염 취약 계층에 열사병이나 열탈진 등 온열 질환 주의를 당부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전국적인 폭염이 예고된 만큼 코로나19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긴장을 놓지 않고 건강 수칙을 잘 실천해달라"며 "특히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분과 65세 이상 어르신과 만성질환자는 온열질환과 코로나19에 모두 취약하므로 폭염 시 낮 시간대 작업과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물·그늘·휴식 3대 수칙을 준수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서현 인턴기자 ssn359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