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 靑 청원 논란
피해자 55.2%, 피해 알리는데 10년 이상 걸려
공소시효 만료돼 신고 못 하는 경우도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19살 여학생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어진 친오빠의 성폭행에 고통을 호소하는 청원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이 학생은 수년간 성폭행 피해를 당했음에도 현재 가해자인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매해 친형제, 자식 등 친족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적인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일 때부터 성범죄에 노출되는 데다, 가족 내에서 범죄를 은폐하기 쉬워 더욱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피해자를 지속해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15일 오후 12시30분기준 16만78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에 따르면 현재 19세인 청원인 A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친오빠에게 성추행당한 것을 시작으로 수년간 친오빠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해왔다. 맞벌이 부모 사이에서 자란 A씨는 한 살 터울인 친오빠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해 왔으나, 친오빠의 성추행은 어느새 성폭행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결국 참다못한 A씨가 2019년 친오빠를 수사기관에 신고했으나, 그는 전혀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검찰로 넘어간 상황에서도 오빠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며 "결국 올해 2월에도 오빠로부터 추행이 있었고, 전 화를 냈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저를 꾸짖으셨다"고 토로했다.


A씨는 가해자인 친오빠를 옹호하는 부모의 태도에 절망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부모님은 현재 가해자인 오빠 편에 서서 사설 변호사를 여럿 선임하여 재판을 준비 중이며, 전 국선 변호사 한 분과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A씨는 "더 이상 남매가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음에도 살가움을 요구하는 부모님 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폭행 피해자인 제가 가해자와 동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와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


친족 간 성범죄는 매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친족관계(4촌 이내)에 의한 성폭력 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 접수 건수는 총 2570건에 달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6년 500건 △2017년 535건 △2018년 578건으로 3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2019년에는 525건으로 소폭 감소했으나, 매년 500건 넘는 친족 간 성범죄가 일어난 셈이다. 친족 성폭력 범죄 특성상 피해자들이 신고하기를 꺼리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범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친족 간 성폭력은 피해자들이 미성년일 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인지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또 범죄를 인지하더라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묵살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를 못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피해자들은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는 셈이다.


일부 피해자들은 성인이 되고, 가해자로부터 독립한 이후에야 관련 기관에 겨우 피해 사실을 알릴 용기를 낸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19년 친족 성폭력 상담 87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 이후 상담까지 10년 이상 걸린 친족 성폭력 사건 사례는 총 48건으로 절반 이상(55.2%)을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가족 간 성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친족 성폭력의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성범죄에 대응하기까지 공소시효 10년을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원 임모(27)씨는 "부모가 자녀를 성폭행한다는 건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행위"라며 "이런 끔찍한 범죄에 공소시효를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철저히 수사해서 언제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공소시효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8)씨는 "제일 의지해야 할 가족에게 성범죄를 당한 거다. 끔찍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라며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거고, 신고를 한다고 해도 재범 위험 때문에 걱정될 것 같다.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엄벌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D

전문가는 친족 간 성범죄는 범죄 특성상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변호사는 "친족 간 성폭력 범죄는 의지해야 할 가족에게 지지받지 못하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범죄다. 나이가 어릴 때는 가족을 울타리 삼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지내야 하는 가족들을 등지고서 신고하기 쉽지 않다. 어른이 되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가 돼서야 비로소 신고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공소시효 등이 걸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챙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