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계기, 반도체 생산 해외 높은 의존 위험성 실감한 美
자국 생산 확대·반중국 블록 강화
반도체 10위권 기업 없는 中 경쟁력 갖추기 전 제압하려는 전략
美가 제재로 시간 버는 동안 韓 기업은 기술 개발에 힘써야

[이종우의 경제읽기]中 반도체 싹 자르려는 美…韓, 기술 개발 나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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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심해졌다.


목적은 둘인데 중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전에 싹을 잘라버리자는 전략이 그 중 하나다. 중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지만 반도체에서는 10위권 내에 들어가 있는 기업이 하나도 없다. 반면 알리바바, 바이두 등 디지털 기업은 미국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얼굴 인식시스템도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상황을 반도체에 적용해 보면 지금은 미국과 기술 격차가 크지만 중국 정부 주도하에 투자를 늘릴 경우 격차가 빠르게 해소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경쟁자를 초기에 제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생산을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실감한 것도 반도체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1달러에 지나지 않는 차량용 반도체 때문에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반도체 중 일부분을 자국 내에서 생산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작년까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직접 제재가 중심이었다. 중국기업 화웨이에 미국 반도체 기술이 포함된 제품을 팔 경우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게 대표적인 예다. 그 영향으로 글로벌 1위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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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자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반중국 블록을 강화하는 쪽으로 압박 수단을 변경했다. 현재 미국은 전세계 반도체 수요의 34%, 생산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둘 사이의 차이만큼을 주로 아시아에서 공급받고 있다.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80%를 아시아 지역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은 매년 6.8%와 3%씩 반도체 투자액을 늘리고 있다. 이 비율이 유지될 경우 2030년에 전세계 반도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로 줄어드는 반면 중국은 24%로 늘어나게 된다. 이 상황이 되면 미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중국의 공급망 속에 흡수될 위험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자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반중국 블록은 대만이 앞장서고 있다. TSMC가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후공정 연구시설을 일본에 만들기로 했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도 막았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이 첨단 반도체 공정용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공급을 막아 중국이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길을 차단했다. 애플은 독일에 모바일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인텔도 유럽에 공장을 새로 지을 계획이다. 중국을 뺀 반도체 동맹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대응에 나섰다. 미국의 제재에 관계없이 제조업 2025 계획이 마무리되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국의 방해로 실리콘 반도체 기술 확보가 어려워질 경우 차세대 반도체인 화합물 반도체나 전기자동차에 많이 사용하는 고전력트랜지스트 개발로 대응하는 전략까지 세웠다.


반도체는 오랜 시간 극심한 변동을 겪어 온 산업이다. 1980년대 중반 D램 반도체를 중심으로 벌어진 치킨 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기업 주도하에 1달러70센트의 생산비가 들어가는 54KD램을 30센트에 내다 파는 경쟁이 벌어져 많은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 와중에 산업구조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한 기업이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지만 치킨 게임 후에는 설계와 생산이 분리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미국이 일본을 압박해 1983년과 1986년 두 번의 반도체 협정을 맺으면서 세계 공급망이 재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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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반도체 갈등이 심해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산업 구조를 바꿀 정도는 아닐 것이다. 반도체 자국내 생산을 늘리고 블록화를 강화해도 설계와 생산을 분리하고 많은 수요를 해외에 의존하는 형태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구조가 이익을 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30년에 미국과 유럽이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20%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초기 비용만 1조 달러가 들어간다.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 그런 투자를 통해 제품이 나오더라도 적정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하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제약 요인이 많아 여러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반도체의 일부분만 자국에서 생산하고 나머지는 블록 강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 받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블록에서 중국은 제외된다.


미·중간 반도체 분쟁은 우리 기업에게 과제를 안겨줬다. ‘무어의 법칙’이 있다.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4개월마다 배가 된다는 이론인데 이 법칙이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 기술의 발달이 느려져 반도체 산업의 정체가 시작된다. 지금 반도체 기술은 한계를 향해 가고 있다. 추가적인 개선이 힘들 정도로 공정이 미세해졌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기술의 개발은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반면 한계 기술 밑에 있는 기업의 추격은 빠르게 진행돼 기술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한때 첨단이었던 산업의 범용화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미국의 제재는 중국 반도체가 따라오는 시간을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 그 사이 우리 기업은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한다. 기술이 한계에 부딪치면 다음은 누가 제품을 싸게 만드느냐 하는 경쟁이 벌어지는데 그 부분에서는 중국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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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수급에 민감한 업종이다.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도 제품가격이 급등하지만 반대 경우에는 가격이 급락한다. 그만큼 기업 이익이 불안정하다. 과거 몇 번의 사례가 있었다. 1995년에 반도체 호황으로 4MD램 가격이 48달러까지 올라갔지만 1년 후에 제품 가격이 90% 넘게 떨어졌다. 직전 호황기였던 2018에도 20조가 넘었던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1년만에 2조7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두 경우 모두 반도체 경기 호황기 때 투자를 늘려 공급 초과가 이뤄진 결과다. 이번 미·중 반도체 경쟁이 예기치 않은 공급 초과를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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